‘파도 파도 나오는 곳’.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에 붙은 별명이다. 이처럼 방대한 매장 유산들은 경주의 정체성이 지만 새롭게 땅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김일구(71·사진) 씨도 최근 노후 사업의 일환으로 앞마당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활용하려 했으나 한숨이 앞섰다. 그가 18년째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서악마을’은 인근에 태종 무열왕릉이 위치해 문화유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신규 건축 공사 허가를 위해서는 매장 유산 진단이 먼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장 유산 발굴조사에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한 번 문화유산의 흔적이 발견되면 정밀 조사와 발굴이 이어지니 건축주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탓에 경주와 부여 등 풍부한 매장 유산을 지닌 지역들에서는 공사 중 나온 문화유산을 도로 묻거나 훼손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왕왕 들려 온다.

지난 15일 직접 확인한 김 씨의 마당은 어느새 건축 공사를 위한 완벽한 준비를 마친 채였다. 지난 7월 국가유산청의 ‘국비지원 발굴조사 사업’에 신청해 무료로 시굴 조사를 마쳤기 때문이다. 김 씨는 “3일의 조사 기간 동안 발굴조사를 맡은 국가유산진흥원이 나무 한 그루 함부로 뽑지 않고 의견에 따라 옮겨 심어 줬다”며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확실히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한 문화유산이 발굴될 경우 미뤄질 공사 일정에 대한 걱정은 없었느냐고 질문하자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말 문화유산이 나온다고 해도 1억5000만 원까지는 정부에서 다 책임져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3일 동안 두 다리 쭉 펴고 아주 잘 잤습니다.” 무열왕릉 일대는 경주역과도 차로 10여 분 거리로 가까워 벌써 20가구 정도의 주민들이 한옥 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김 씨도 국비지원 발굴조사에 힘입어 내년에는 한옥 스테이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처럼 국가유산청의 국비지원 발굴조사 사업은 문화유산과 개인의 재산권을 동시에 지키고 지역 발전에도 긍정적인 마중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에서도 이와 같은 정책 수요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예산 증액을 거듭하고 있다. 2010년 지원사업 도입 당시 30억 원이던 예산은 8배 이상으로 증가해 올해는 240억 원이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지원 사업 신청 건수도 15년간 꾸준히 증가했으며 2023년 동기 대비 올해에도 16.6% 증가해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업을 담당하는 국가유산진흥원의 이현정 발굴기획팀장은 “국비지원 발굴조사 사업은 평범한 일상 속에 묻혀 있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문화유산들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며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국민의 생활이 더욱 행복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출처:https://v.daum.net/v/2024112009181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