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에이아이)이 예능프로그램에도 스며들었다. 지난 27일 시작한 문화방송(MBC) 4부작 ‘피디가 사라졌다!’는 에이아이로 구현된 피디(PD) 엠(M)파고가 진행자 겸 지시자로 등장해 출연자 10명한테 다양한 게임을 제시하는 미션 수행 형식이다. 엠파고 피디는 출연자 각자가 원하는 게임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새 게임을 창출한다. 게임이 끝나면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편집해 보여주고 분량 순서대로 출연료를 산정한다. 예컨대 1라운드에서 수도 찾기, 초성 게임, 허벅지 씨름, 숫자 맞히기, 랩 디스전, 상대방 장점 칭찬하기 등이 제시되면 이를 조합해 ‘음악과 칭찬의 페스티벌’ 게임을 만드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자신이 정한 음악에 맞춰 프리스타일 랩으로 다른 참가자를 반드시 칭찬해야 하는 식의 규칙도 정해준다.
에이아이 기술은 최근 ‘카지노’를 시작으로 ‘웰컴 투 삼달리’ ‘살인자ㅇ난감’까지 드라마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전적으로 개입한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문화방송 쪽은 “에이아이 기술이 방송을 이끌어 나가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피지컬 100’ 윤권수 피디와 ‘진짜 사나이’ 최민근 피디는 2022년 11월 챗지피티 초기 베타버전이 나왔을 때 에이아이 기술에 호기심을 갖게 됐고 이를 이용한 프로그램을 떠올렸다고 한다. 지난해 한국전파진흥협회 ‘차세대방송 성장기반 조성 사업’ 지원 작품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작이 진행됐다.
프로그램의 핵심인 엠파고는 인공지능과 페르소나(인격생성)부터 외형에서 중요한 표정, 음성, 입술 모양 학습까지 거쳤다고 한다. 엠파고를 만든 아이티(IT)기업 클레오는 에이아이 기술은 사람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이 가능한, 현실 인물의 디지털 휴먼이 등장하는 등 더욱 정교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피디가 사라졌다!’에서도 엠파고는 출연자의 항의나 제안 등에 “편집권은 전적으로 피디한테 있다”거나 “내가 만든 게임을 없앨 순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출연자와 소통하고 결정권자로서 판단하는 인간 피디와 별반 다르지 않다. 1부에서 다소 유치하고 심심했던 게임은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복잡해진다. 2부에서는 없던 벌칙이 생기는 등 엠파고가 학습을 통해 진화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출연자들의 모습을 학습한 엠파고가 점점 그들을 통제하게 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출연자들은 엠파고의 황당한 게임이 당혹스럽지만 어떻게든 판단 기준, 알고리즘 등을 찾아내려고 머리를 맞댄다. 그러나 결국 엠파고를 추종하는 사람, 반발하는 사람 등으로 나뉘고 출연자들끼리 갈등하고 분열이 생긴다.
에이아이를 그대로 따를 것인가, 보조적 역할로 둘 것인가? 에이아이는 결국 인간이 어떻게 학습시키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문화방송 쪽은 “게임 그 자체보다 에이아이가 지배하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간들의 갈등과 욕망이 관전 포인트”라며 “‘피디가 사라졌다!’는 사회실험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출연자 중 한명인 ‘성확정 수술’ 전문가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교수는 프로그램에서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에이아이가 확실하지 않은 걸 주면 (출연자들이) 게임에서 룰을 만드는 등 에이아이와 인간이 같이 일하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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