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쥔데르트는 따스하고 인정 많은 마을이지만, 고흐의 어린 시절엔 부모님의 폐쇄적인 교육관 때문에 고흐네 아이들은 늘 집안에 갇혀 살다시피 했다.

동네 친구들이 별로 없으니 서로가 서로를 향한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고흐의 형제자매들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부모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면화했다.반 고흐 집안의 아이들은 그리하여 부모로부터의 정서적인 독립에 커다란 문제를 겪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이 정든 목사관을 떠난 후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며 두려움과 자책감을 공유했다. 반 고흐 집안의 아이들은 서로에게 이런 편지를 쓰곤 했다고 한다. "우리는 얼마나 더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부모님께 별로 쓸모가 없는 존재야."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던 고흐는 부모님의 기대를 가장 많이 저버리면서도, 부모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싶어했다. 누구보다도 간절히 신께 기도하고, 누구보다도 절실히 부모님의 사랑을 필요로 한 고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가족들과 섞일 수 없다'는 소외감을 천형처럼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고흐의 동생 리스는 고흐를 이렇게 묘사할 정도였다. "빈센트의 동생들은 하나같이 그에게는 낯선 존재들일 뿐이었다. 빈센트는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낯선 존재였다."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낸 동생들에게조차도, 빈센트는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사랑스러운 테오의 중재만으로는 그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이럴 때 그의 유일한 친구는 자연이었다. 그는 산과 들을 누비며 홀로 헤맬 때 원기를 되찾고 용기를 내곤 했다.

　평생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던 고흐였지만, 놀랍게도 그의 첫 번째 스승은 어머니였다. 아나는 자신이 어렸을 때 취미로 배운 그림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자신이 그린 작품을 아이들에게 주면서 따라 그리고 색칠도 해보게 했다. 고흐의 해바라기 속에 '뭔가 특별한 아우라'가 있다고 느껴진 것은 바로 이 '어머니를 향한 양가감정' 때문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태양을 향해 온몸을 기울이지만, 결국 태양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해바라기처럼, 고흐는 어머니의 사랑을 열망했지만 평생 어머니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에는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한 번도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의 오랜 슬픔이 서려있는 것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