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약 7.5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시집 서점인 ‘위트 앤 시니컬’의 주인인 유희경 시인이 새 시집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문학과지성)을 냈다.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2011), 두 번째 시집 ‘당신의 자리’(2013) 이후 5년 만으로 그간 써온 시들 중에서 66편을 가려 묶었다. 2016년 여름,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접고 시집 서점을 차린 뒤에 낸 첫 시집이다.
지난 13일 서울 신촌역 앞 위트 앤 시니컬에서 만난 시인은 인터뷰의 내용이 ‘서점 주인’보다는 시집을 낸 ‘시인’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인의 작은 서점’이라는 낭만적인 아우라 때문에 때론 시인보다는 서점 주인으로 더 유명세를 치르다 보니 나온 말이다. 그래서 이번 시집은 이전 시집과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었다 .
“이번 시집을 내면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요. 이전에는 현상을 고스란히 옮기는 데 바빴다면 이번에는 유희경이라는 시인의 필터로 현상을 해석했다고 할까요.” 하지만 시인은 이 세상 전체를 해석하기보다는 세상의 부분 부분을 바라본다. “나무 위로 고양이가 올라가고 내려오지 못하는 사이 목련이 피었다”로 시작하는 시 ‘합정동’처럼 시인은 고양이가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는 이 짧은 시간에 핀 꽃에서 세상을 본다.
시의 아름다움이라면 “어마어마하게 큰 이야기를 비유, 은유를 무기로 짧게 담아내는 것”이라는 그는 합정동에서, 또 합정동에 핀 목련 같은 부분 부분에서 세계를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이라는 표제작처럼 이 부분들이 누군가에겐 ‘신’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딸이, 딸의 미소가, 숨소리가, 이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신일 수 있다. 작은 것에 깃든 거대한 신”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독자들도 순서 없이 아무 곳이나 펼쳐, 세상의 조각 조각, 부분 부분들을 읽으며 거기에 깃든 신을 만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의 신작 시집은 위트 앤 시니컬에서 며칠 만에 100여 권이 팔려나갔다. 실제로 2500여 권의 시집이 꽂혀 있는 그의 서점에서 최고 인기 시집은 유희경의 시집이다. 시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 나누며, 시집을 살 수 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시집이 ‘마이너 장르’로 취급되는 시대, 시집 서점에 누가 관심을 갖겠느냐고 시작한 서점은 하루 20∼30명의 독자들이 찾아와 월 1000권의 시집이 팔리는 작은 명소가 됐다. 독자와의 대화보다는 시 낭독에 집중하는 낭독회의 새로운 전형을 만든 유 시인은 “지난 2년 동안 시가 많은 사람에게 가닿도록 하기 위한 ‘참고 모델’이 됐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황동규부터 황인찬의 시집까지 꽂혀 있는 서가를 보면 때론 아득하고 영광스럽다는 그는 이제 서점으로 돈을 좀 벌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시집 팔아 부자가 되겠다는 불가능한 꿈은 당연히 아니고, 그저 현실의 등락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여건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단순히 감동을 주는 시집이 아니라 독자들이 시집을 펼쳐 어떤 힌트를 얻고, 방향을 제시받았으면 합니다. 시집이 나의 세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세계가 될 수 있기를, 그렇게 세계를 만드는 재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시집에 대한 시인의 바람이다. ‘세계를 만드는 재료가 되고 싶다’는 이 바람은 시인의 시 작업 전체에 대한 고백이자, 시와 독자 사이를 이어주는 책방 주인으로서의 지향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