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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四面楚歌 와 覇王別姬
초(楚)나라의 항우(項羽)는 한(漢)나라의 유방(劉邦)과 천하를 다투다가 서서히 세력이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그가 총애하던 장수 범증(范增)마저 항우를 떠나고, 결국 한나라와 강화를 맺고 동쪽으로 돌아가던 도중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명장인 한신(韓信)에게 포위당하고 말게 되었다.
포위를 빠져나갈 길은 없고 군사는 줄어들며 식량 역시 바닥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나라의 군대는 점점 포위망을 좁혀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고향을 그리는 구슬픈 초나라의 노래가 사방에 들려왔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항우는 그 노래를 듣고 "초는 이미 유방에게 넘어갔다는 말인가?
어찌 포로의 수가 저렇게 많은가!"라며 탄식하였다.
초나라가 한나라에 점령당한 것으로 오인한 항우는 진중에서 마지막 연회를 베풀었다.
그리고
" 力拔山 氣蓋世 역발산기개세
(힘은 산을 뽑고 세상을 덮은 만큼 기개는 드높은데)
時不利兮 騅不逝 시불리혜추불서
(때가 이롭지 못하니 추도 나아가지 않는구나)
騅不逝兮 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하는가)
虞兮虞兮 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
(우희여, 우희여, 너를 어찌해야하는가)"
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하며,
그가 총애하던 우미인(虞美人, 우희)에게 유방에게 가서 목숨을 보전하라고 하나, 그녀는 두 지아비를 섬길 수 없다며 그의 시에 화답하고 자결했다.
이에 항우는 얼마 남지 않은 잔병을 이끌고 오강까지 갔으나 차마 건너지 못하고 자결했는데, 그의 나이 31세였다.
 ■ 영화 覇王別姬
한나라의 건국역사를 기록한 초한지에는 애첩 우희와 함께 궁지에 몰리게 된 항우가 읊었던 해하가와 비장한 그들의 최후가 담겨있다. 이 이야기를 토대로 1918년에 완성된 경극 패왕별희에는 그 구절이 대사와 함께 노래로 첨부되어 있다.
그러나 경극보다는 이 경극을 소재로 한 1993년 작 영화로 더 유명하다.
첸 카이거 감독의 작품인'패왕별희'는 장국영과 장풍의,공리 등 걸출한 배우들의 빼어나고 섬세한 연기를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영화 중 한 작품이다.
▶ 패왕별희의 장면들
守泉 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