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문화공동체와 함께하는 출장 편집국 (4)사천 문화예술인 간담회 흩어진 예술인·기획자 만날 장 필요 민간이 움직일 문화 거점공간 부족 레지던시도 공간 넘어 교류 갖춰야 지역 자원서 ‘사천만의 문화’ 찾아야
경남도민일보는 올해 도내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지역 문화공동체와 함께하는 출장 편집국'을 진행합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공동체활성화프로젝트' 사업 지원을 받은 일종의 체류형 지역 기록 프로젝트입니다. 본사 기자들, 다른 지역 예술인들이 일정 기간 그 지역에 머무르면서 지역 문화 예술인들을 만나고, 문화 공간을 찾아보며 서로를 연결하고 기록하는 활동입니다. 세 번째 지역인 사천에서는 9월 19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됐습니다.
사천 문화예술을 주제로 열린 간담회 모습. /이서후 기자
사천에서 진행한 문화예술인 간담회에서는 지역 안팎에서 사천 문화예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사천시 송포동(삼천포)에서 카페 정미소와 전시·레지던시 공간 '쌀'을 운영하는 이가형 대표, 하동에 살며 공간 쌀과 사천시 청년문화복합공간 놀라운지 작업 경험이 있는 지민희 작가, 사천에서 문화예술교육과 전시를 기획하는 김미정 청년기획자, 수도권에 거주하며 놀라운지 하반기 입주 작가인 유해린 작가다. 진행은 통영을 중심으로 지역 공연 기획을 하는 김호진 튜나레이블 대표가 맡았다.
다들 개별적 활동…일단 만나야
간담회에서는 사천에서 활동하는 전업 작가와 청년 예술인이 눈에 잘 띄지 않고, 문화기획자를 찾기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반면 곳곳에서는 문화예술교육과 전시를 기획하고, 작업실과 전시공간·공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서로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기 어렵고, 만나 이야기를 나눌 자리도 많지 않다고 했다.
사천에서 카페 정미소와 전시·레지던시 공간 '쌀'을 운영하는 이가형 대표. /이서후 기자
사천에서 카페 정미소와 전시·레지던시 공간 '쌀'을 운영하는 이가형 대표. /이서후 기자
이가형 대표는 2013년 고향 삼천포로 돌아왔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지역에서 작업만으로 살아가기 어려워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후 전시와 레지던시를 하는 '공간 쌀'을 만들었다. 지역 활동을 시작하면서 하나씩 다른 예술인과 기획자를 알게 됐다. 문제는 그 사람들이 서로 이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민희 작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천에 머문 1년 동안 이미 활동하는 사람과 공간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실제 서로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했다.
"개인끼리 계속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힘드니까 관과 민간을 아우르면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지민희)
이와 관련해 누가 어떤 작업을 하고 있고, 어떤 공간과 장비를 갖고 있으며, 누구와 협업할 수 있는지를 계속 갱신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사람과 공간, 지역 문화자원을 찾아볼 수 있는 아카이브가 있으면 새로운 기획자도 기존 자원을 다시 활용할 수 있다.
하동에 살며 공간 쌀과 사천시 청년문화복합공간 놀라운지 작업 경험이 있는 지민희 작가. /이서후 기자
하동에 살며 공간 쌀과 사천시 청년문화복합공간 놀라운지 작업 경험이 있는 지민희 작가. /이서후 기자
민간 공간 있어야 예술인 모여
두 번째 이야기는 공간이었다. 사천에는 사천시문화예술회관과 사천미술관을 비롯한 공공 문화시설이 있다. 그러나 참석자들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공연이나 전시를 보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찾는 시설과 조금 달랐다.
작가가 작업하고, 아이들이 문화예술 교육을 받고, 기획자가 회의하고, 외부 작가가 머물고, 전시나 작은 모임도 수시로 열 수 있는 생활 안의 거점이었다.
사천에서 문화예술교육과 전시를 기획하는 김미정 청년기획자. /이서후 기자
사천에서 문화예술교육과 전시를 기획하는 김미정 청년기획자. /이서후 기자
김미정 기획자는 현재 진주에 기반을 둔 문화예술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사천과 고성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그는 사천에도 교육과 전시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민간 공간을 마련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공간 쌀 레지던시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레지던시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역에서 작업하려면 무엇보다 함께할 사람이 필요했고, 사람을 어떻게 불러올지를 고민하다 레지던시를 시작했다.
올해도 별다른 광고 없이 누리소통망(SNS)으로 입주 작가를 모집했는데 서울과 인천, 대구, 울산, 창원 등 전국 각지에서 지원자가 들어왔다.
공간이 생기자 외부 작가가 사천으로 들어왔다. 지 작가도 지난해 여름 3개월 동안 이곳에서 작업했다. 이후 사천에 더 머물고 놀라운지 첫 입주작가로 지원했고, 다음 입주 작가인 유해린 작가와도 연결됐다.
사천시 청년문화복합공간 놀라운지 전시 공간 /사천문화재단
유 작가는 사천에서 활동하면서 외부인의 시선이 지역 사람에게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바라보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놀라운지 같은 예술 프로그램이 더 확장되어 더 많은 작가 교류하고픈 마음이 있다.
"다른 지역 작가들과 섞이면 외부에서 사천을 바라보면서 여기 사는 분들이 발견하지 못했던 것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유해린)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제안은 새로운 시설을 계속 만드는 것보다는 이미 있는 공간과 사업에 기획자와 동료, 교류 프로그램을 함께 넣어 실제 창작자가 머물 수 있도록 하자는 쪽이었다.
사천시 청년문화복합공간 놀라운지 하반기 입주작가인 유해린 작가. /이서후 기자
사천시 청년문화복합공간 놀라운지 하반기 입주작가인 유해린 작가. /이서후 기자
'사천만의' 어떤 것 만들자
지역 축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사천에서 대형 행사와 공연이 상대적으로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 대표는 올해 처음 찾은 와룡문화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어린 자녀와 함께 둘러보니 체험할 프로그램이 많았고, 며칠을 다녀도 다 해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참여할 게 꽤 많더라고요. 대중가수도 필요하고, 그런 공연도 당연히 있어야죠. 그런데 사천만의 어떤 것도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이가형)
사천문화재단도 와룡문화제를 단순 공연축제와 차별화하기 위해 고려 현종과 와룡산, 우주항공을 소재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올해 와룡문화제에서도 용 승천 퍼포먼스와 가산오광대·마도갈방아소리 등 지역 문화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2025년 사천 와룡문화제 모습. /사천시
간담회에서는 '사천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나왔다.
이 대표는 과거 '사천세계타악축제'를 떠올렸다. 사천세계타악축제는 지역 전통문화인 진주·삼천포농악을 바탕으로 2006년 시작해 해외 타악팀 공연과 타악기 체험, 경연 등을 함께했던 행사다. 2014년에는 11개국 19개 타악팀이 참여했다.
"저는 타악축제를 알고 있는 세대예요. 아프리카에서도 오고 여러 나라에서 와서 공연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진주·삼천포농악이라는 지역 자원에서 시작한 거였어요. 사천 하면 떠오르는 축제가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이가형)
그는 비토섬과 별주부전 이야기, 고려 현종, 도예, 농악, 삼천포 바다 등 지역에서 이미 갖고 있는 것을 예술인과 기획자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저도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사천에 어떤 문화재가 있고 어떤 역사가 있는지 잘 몰라요. 비토섬 이야기도 최근에 알았고 현종 이야기도 나중에 알았어요. 일단 사천에 뭐가 있는지 우리 스스로 작가들도 찾아보고 문화기획자들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이가형)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말해야"
사천 문화예술을 주제로 열린 간담회 모습. /이서후 기자
이야기는 다시 예술인 자신들에게 돌아왔다. 행정과 재단에 지원을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것만으로 사천의 문화예술 환경이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대표는 예술인과 기존 문화단체, 새로운 기획자, 행정이 한자리에 앉아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고 했다.
"맨날 뒤에서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그러면 어떻게 바꿀 거냐, 뭐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죠.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게 있으면 요구하고, 우리가 할 게 있으면 해야 해요.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많이 만나야 할 것 같아요."(이가형)
지 작가는 그 사이를 잇는 '매개자'를 강조했다. 작가가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과 현장을 이해하면서 사업을 설계하고, 흩어진 사람을 연결하는 기획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기획자는 사천에는 예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사람들도 사천의 문화예술을 만들어갈 '인적 자원'으로 봤다.
사천 문화예술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묻는 두 시간 가까운 이야기는 결국 다시 이 말로 돌아온다. 일단 서로 만나야 한다는 거다.
관련해 이 대표는 최근 사천에서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작가와 기획자들이 조금씩 만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아직 모임 이름이나 형식도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