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부산비엔날레 개막 시각보다 청각에 맞춘 이색 전시 22개국 46팀 참여 다양한 작품 파도·뱃고동·민중가요 어우러져 노동·이주·식민 기억까지 담아
류성실의 설치작품 ‘만 가지 꿈’은 리프트 위에 선 12구의 마네킹과 15분짜리 합창곡으로 이뤄져 있다. /부산=조상인기자
교복을 입은 12구의 마네킹이 리프트 위에 유령처럼 서 있다. 세계일주를 마치고 금의환향하라 요구받는 아이, 95세에도 원대한 꿈을 향해 달려야 하는 해골, 500년간 누구도 완수하지 못한 과업을 짊어진 채 끝없는 도로를 걷는 소녀가 등장하는 류성실의 신작 ‘만 가지 꿈’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사람을 자원 삼아 달려온 시간이 15분짜리 합창곡으로 울려 퍼진다. 인물이 노래할 때마다 벌린 입에 혓바닥처럼 달린 황금빛 술이 흔들리고 눈에는 불이 켜진다. 기괴한데 웃음 나고, 밝을수록 서늘하다.
2026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 28일 개막해 29일부터 관객을 맞기 시작했다. 22개국 46팀의 작가가 설치와 사운드, 퍼포먼스, 영상, 조각으로 참여했다. 전시는 부산시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과 영도구 옛 부산남고등학교, 스페이스 원지까지 3곳에 나뉘어 펼쳐진다.
이번 비엔날레는 눈으로 즐기는 시각적 스펙타클보다는 귓가를 울리는 노래, 즉 사운드아트에 주력했다. 국제 공모로 선정된 에블린 사이먼스와 아말 칼라프 공동 전시감독은 “항구 도시 부산은 파도와 여객선 소리, 도시의 소음, 노동 운동의 역사와 민중가요까지 다양한 소리로 가득하다”면서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투쟁부터 4·19혁명, 6월항쟁, 광주민주화운동, 촛불 시위까지 체제에 맞서 목소리를 낸 한국인의 살아 숨쉬는 이야기가 이번 비엔날레의 시작점이 됐다”고 소개했다.
메인 전시장인 부산현대미술관은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을숙도에 자리잡고 있다. 입구 위쪽으로 걸린 임민욱의 ‘노래하는 은자’는 민중가요 저장소가 제공한 노찾사, 김민기 등의 민중가요 음반 재킷을 천에 드로잉한 작품이다. 로비에서 음원을 직접 들을 수도 있다. 영도로 건너가면 학교가 전시장이 된다.
몽골 작가 얀찬호롤 에르데네바야르의 ‘토착성의 공명’은 부산시 영도에 위치한 옛 부산남고에서 만날 수 있다. /부산=조상인기자
학생들이 모두 떠난 옛 부산남고의 한 교실에는 나무와 금속, 인조 모피로 만든 의자 조각 열다섯 점이 학생을 기다리듯 줄지어 있다. 몽골 작가 얀찬호롤 에르데네바야르의 ‘토착성의 공명’이다. 울란바토르 야외 시장에서 가져온 의자와 현장에서 녹음한 소음이 빈 교실에 일상의 리듬을 되돌린다. 운동장에는 알리아스카르 아바카스가 세 가지 색조의 재활용 직물을 거대한 악보처럼 펼쳐 놓았다. 부산 작가 박현성은 옛 급식실을 푸른빛과 호스, 바닷속 생명체를 닮은 조각으로 채웠다. 듀킴은 퀴어의 몸과 종교적 도상을 뒤섞고, 건물을 연결하는 구름다리 공간에 맹목적 신앙과 우상숭배, 아이돌을 향한 형광봉 등을 배치해 새로운 해방을 생각하게 한다.
줄리앙 크뤼제의 7대의 자동차와 영상 설치작업은 옛 선박 수리창고였던 스페이스 원지에서 만날 수 있다. /부산=조상인기자
‘스페이스 원지’는 100년 전 선박 수리 창고를 고쳐 쓴 공간이다. 녹슨 철골과 천장 채광창 아래 작품이 놓인 풍경은 베니스의 아르세날레를 방불케 한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 대표작가였던 줄리앙 크뤼제는 프린트한 천으로 감싼 자동차 7대를 눕혀 놓았다. 산업사회의 상징인 자동차가 해저 생물이나 고대 유물처럼 보인다. 식민지 브라질의 해방 공동체를 이끈 줌비 두스 파우마레스가 등장하는 영상은 멀리 대서양이 간직한 저항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필리핀 작가 조아르 송쿠야는 선원으로 일한 경험을 회화 110여 점에 옮겼다. 작품 일부는 부산교통공사와 협업해 교통카드로 제작됐다. 브라힘 탈의 ‘불협화음의 합창: 바다의 창조’는 19대의 스피커에서 영어·프랑스어·포르투갈어로 낭송되는 시가 겹치며 하나의 합창이 되는 과정을 들려준다.
이번 비엔날레 관람은 스페이스 원지에서 마무리하길 추천한다. 전시장 바로 앞에 바다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전시감독들의 말처럼 바다는 모든 것을 연결한다. 노동요와 무가(巫歌), 뱃고동과 파도가 뒤섞여 온 항구도시의 소리를 이번 비엔날레는 담론의 자리로 끌어올렸다. 이주와 노동, 식민의 기억, 무거운 주제들이 이루는 왁자지껄한 합창을 곱씹기 좋은 곳이다. 부산현대미술관 입장권은 일반 1만6000원이며 스페이스 원지와 부산남고 관람은 무료다. 세 전시장을 잇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11월 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