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발굴 50주년 사리장엄구 특별전 국립경주박물관, 117건 322점 선보여 872년 제작 사리함서 장인 4명 이름 확인
11일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 기념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 언론 공개에서 참석자들의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은 872년 제작 봉안된 금동 사리함을 재현한 복제품. 연합뉴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5년 건립된 황룡사 9층목탑은 고려 고종 때인 1238년 몽고 침입으로 깡그리 불탔다. 주춧돌이 나뒹구는 폐사지에 본격 발굴이 시작된 건 1976년. 특히 목탑의 심초석(心礎石,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 아래 사리공(舍利孔, 사리를 모시러 탑 안에 조성한 공간)에 대한 조사가 치밀하게 이뤄졌다. 앞서 1964년 도굴 사건으로 세상 빛을 본 사리장엄구의 남은 편(片, 조각)들과 작은 구슬 등 수천점이 수거됐다. 대강의 윤곽은 파악됐지만 세세한 실체는 3D 스캔, 엑스선 분석 등 21세기 과학의 손길을 기다려야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 50주년을 맞아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를 열고 ‘황룡사 찰주본기’가 새겨진 금동 사리함(872년 제작, 보물) 등 117건 322점을 오는 10월 11일까지 선보인다. 앞서 2018년 황룡사 가람과 목탑, 사리장엄구를 종합 소개했던 특별전에서 나아가 사리장엄구만 집중 조명한다. 10일 언론공개회에서 신명희 학예연구사는 “고려 때까지 다섯 차례 중수(重修)됐던 황룡사 목탑 내 사리함이 어떤 구조로 이뤄지고 추가됐는지, 지난 8년간 분석·연구한 결과”라고 말했다.
11일 경북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윤상덕)에서 열린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 기념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 언론 공개에서 다양한 유물이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특별전은 오는 12일부터 올해 10월 11일까지 열린다. 연합뉴스
무엇보다 “핀셋으로 골라낸 수백개 편(片)들을 밤낮으로 끼워 맞추는 노력”(최기은 학예연구사)에 힘입어 창건 당시(645년) 제작된 금동 사리함의 4면과 바닥이 대략적 형체를 회복했다. 각 판엔 두 명의 신장상(神將像, 일종의 수호신)이 새겨져 모두 여덟 신장상이 사리를 둘러싸고 지키는 모양새다. 사리공 전체를 꽉 채운 크기의 이 사리함은 이후 목탑이 중수될 때마다 추가 사리함을 품게 되는데, 그 중 핵심이 통일신라 경문왕 12년(872년)에 제작된 금동 사리함이다.
872년 사리함은 각 면의 안팎에 새겨진 900여자의 한자, 즉 ‘탑의 중심 기둥(찰주)에 관한 기록’인 찰주본기와 수많은 인명(人名)으로 인해 수십년간 집중 연구 대상이었다. 이번 보존처리 과정에선 초정밀 분석을 거쳐 24자의 한자가 추가로 해독됐고 이를 통해 12명의 사람 이름이 확인됐다. 특히 뚜껑의 연꽃무늬 옆에선 ‘금속을 새긴다’는 의미의 한자 누(鏤)와 함께 김충(金忠), 연장(連長), 청선(淸宣)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바닥표면에서도 연창(連昌)이라는 이름이 확인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2일부터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 기념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를 연다. 사진은 보존처리를 통해 원형을 상당 부분 회복한 금동 사리함(645년 제작)의 북쪽 면.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을 맞아 오는 12일부터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황룡봉불(皇龍奉佛)'를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872년 제작 봉안된 금동 사리함 뚜껑의 안쪽 면(X선 사진)과 바닥 판으로 추정되는 조각에서 발견한 명문. 연합뉴스
국립경주박물관이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을 맞아 오는 12일부터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황룡봉불(皇龍奉佛)'를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금동 사리함(복원품)과 사리장엄구 봉안 재현 모습.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신명희 학예사는 “사리함 본체에 새겨진 이름들은 사리장엄구 조성에 관여한 승려·관료로 알려져 있어, 이번에 별도로 발견된 이름들은 함을 제작할 때 실제로 새기고 조각한 장인들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황룡사의 목탑 중수가 왕실뿐 아니라 수많은 기술자·장인이 함께 참여한 국가적 사업이었다는 점에서 이름을 새김으로써 책임을 다한 것 같다”고 했다. 일종의 ‘제작자 실명제’가 1100년 전에 신라에서도 실행되고 있었단 의미다. 이번에 4명 이름을 추가하면서 872년 사리함에서 확인된 인명은 총 61명으로 늘었다.
이들 사리장엄구는 황룡사 9층 목탑의 신비를 푸는 기초 열쇠와 같다. 이 같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같은 통일신라기에 제작된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사리기와 납석제 사리호(보물)도 전시장에 나들이했다. 또 ‘찰주본기’엔 기록돼 있지만 유물로 전하지 않는 황룡사 사리장엄 소탑(小塔)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합천 해인사 길상탑의 탑지석과 소탑 99기를 진열했다. 사리함의 조성과정과 내부를 안내하는 디지털 영상물이 전시장 곳곳에서 이해를 돕는다.
윤상덕 관장은 “이번 전시는 320여점의 유물과 기록의 행간을 따라가면서 당시 신라 왕실의 국가 의례를 살펴보고 천년 전 신라인의 ‘불국토’ 염원을 돌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올해 초 ‘금관 특별전’과 APEC 정상회의로 이목이 집중된 경주박물관은 지난 5월 30일 관람객 100만을 돌파하면서 전년 동기(57만6104명) 대비 73%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12일부터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 기념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를 연다. 사진은 전시에 출품된 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제 사리호(보물)와 금동 사리함(863년).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12일부터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 기념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를 연다. 사진은 전시에 출품된 합천 해인사 길상탑 탑지석과 소탑(895년).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은 12일부터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 기념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를 연다. 사진은 황룡사 목탑 심초석 하부 출토품들. 사진 국립경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