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세계의 발효'를 찾아 나섰을까. 발효는 인류가 발견한 가장 오래된 '푸드 테크(Food Tech)' 중 하나다. 경주에서 전통 장독으로 액젓, 간장, 된장을 만드는 식품기업 '진아에프앤씨'의 송연실 대표와 이찬재 실장(서울대 푸드테크학과 석사과정)은 세계의 발효문화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궁금했다. 스페인 레스칼라의 엠푸리에스와 타리파의 바엘로 클라우디아, 안달루시아의 하몬과 치즈 마을, 그리고 아프리카의 발효 현장까지. '세계의 발효를 찾아서'는 인간이 자연의 시간과 미생물을 빌려 음식을 만들어 온 문명의 흔적을 따라가는 탐사 기록이다. <기자말>
[이찬재·송연실 기자]
▲ 송연실 진아에프앤씨 대표가 스페인 레스칼라(L'Escala)의 엠푸리에스 고고학박물관(Museu d'Arqueologia de Catalunya?Empuries)을 방문해 고대 지중해 발효문명과 가룸(Garum) 산업의 역사를 탐방하고 있다.
ⓒ 이찬재
▲ 엠푸리에스 유적지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 가룸 발효조. 사진 뒤편의 건물은 현재 엠푸리에스 고고학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수도원 건물로, 고대 지중해의 발효산업과 해상무역의 역사를 보존·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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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탈루냐 코스타 브라바의 푸른 품에 안긴 작은 해안 도시 레스칼라.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찬란한 발자취를 남긴 고대 항구 도시 엠푸리에스 유적지 깊숙이 들어가면, 지중해 발효 문명의 도도한 숨결을 고스란히 박제해 둔 특별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엠푸리에스 고고학 박물관(Museu d'Arqueologia de Catalunya - Empúries)'이다.
1614년에 건립된 이 석조 건축물은 성모 영보 수도원(Convento de la Anunciación)이 있던 자리다. 박물관은 이 유서 깊은 수도원의 터와 외관 원형을 보존하며 현대적인 전시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1908년, 카탈루냐 정부의 주도로 엠푸리에스 유적의 공식 발굴을 주관했던 카탈루냐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이자 고고학자 푸이그 이 카다팔크(Puig i Cadafalch)가 방치되어 있던 수도원 건물 일부를 개조해 연구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 오늘날 박물관의 위대한 출발점이 되었다. 현재 카탈루냐 고고학 박물관(MAC)의 공식 분관으로 운영되는 이곳에는,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제국까지 전개된 해양 문명의 유물들이 지층처럼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고대 파편들을 수습해 둔 흔한 전시관 정도로 생각했으나, 박물관의 어두운 전시실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그 인상은 곧 경이로움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단순한 유물 보관소가 아니었다. 2500년 전 지중해를 가로질러 역동적으로 이동했던 사람과 물자, 그리고 푸른 생선과 소금이 자아낸 발효 식품의 해상 이동 경로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거대한 역사 기록 보관소였다.
전시실의 가장 깊은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자, 그리스인들의 옛 도시 구역(Neàpolis, 네아폴리스) 안에서 출토된 백색 대리석의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석상이 우리 일행을 압도했다. 기원전 4세기경 제작된 이 의술의 신 석상은 단순한 종교적 상징을 넘어,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 거친 코스타 브라바 앞바다까지 얼마나 완벽한 문명의 시스템을 이식했는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물이다.
그들은 단순히 무역 상품만을 실어 나른 정복자가 아니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믿던 신앙과 철학, 고도의 의학적 지식, 건축 기술, 그리고 생선 내장의 자가소화효소를 다스려 맑고 영롱한 가룸(Garum)을 담그던 정교한 식문화까지, 이베리아반도의 변방에 통째로 뿌리내렸던 것이다.
2500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을 견뎌낸 석상 앞에 서서 유리창 너머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형형한 눈빛을 가진 신상은 마치 지중해 고대의 발효 과학과 감칠맛의 근원을 공부하기 위해 먼 길을 온 한반도의 이방인을 흐뭇하게 내려다보는 듯했다. 그 눈길 끝에서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고대의 엠푸리에스는 그저 배가 드나들던 평범한 무역항이 아니라, 대자연의 시간과 인류의 지혜가 교차하며 위대한 감칠맛의 실크로드를 열어젖힌 거대한 국제도시였음을.
뾰족한 바닥의 비밀: 첨단 물류 패키지 '암포라(Amphora)'
▲ 엠푸리에스 유적지에 남아 있는 로마 시대 가룸 발효조. 사진 뒤편의 건물은 현재 엠푸리에스 고고학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옛 수도원 건물로, 고대 지중해의 발효산업과 해상무역의 역사를 보존·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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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수많은 암포라(Amphora) 컬렉션이었다. 인근 해역의 난파선과 항구 유적에서 출토된 이 특수 도자기는, 석조 발효 탱크에서 지중해의 태양과 해풍으로 완성된 감칠맛을 지중해 전역으로 퍼뜨린 주인공이자, 배의 화물칸에 안정적으로 적재하기 위해 설계된 고대의 물류 컨테이너였다. 박물관에 전시된 암포라들은 지중해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발효 식품 유통망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암포라 안에는 올리브유·와인·곡물뿐 아니라 가룸(Garum)과 리쿠아멘(Liquamen) 같은 발효 생선 소스가 담겨 있었다. 오늘날 한국의 액젓과 비슷한 역할을 했던 이 발효 조미료들은 지중해 전역으로 유통되며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식탁을 지배했다.
그 앞을 서성이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왜 한국의 장독처럼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지 않고, 아래쪽을 뾰족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를 안내한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오랜 궁금증이 순식간에 풀렸다. 뾰족한 바닥은 육지에서는 불안정해 보이지만, 파도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상선의 화물칸에서는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구조였다.
선원들은 배 밑바닥에 두꺼운 모래를 깔거나 나무 틀을 놓은 뒤, 뾰족한 암포라의 끝을 깊숙이 꽂아 넣었다. 이렇게 하면 거친 풍랑 속에서도 도자기가 쓰러지지 않았고, 둥근 형태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밀도 있게 화물을 적재할 수 있었다. 암포라의 뾰족한 바닥과 양손잡이는 세명의 인부들이 배에 싣고 내리기에 최적화된 첨단 해상 물류 패키지였던 셈이다.
운송 중 내용물을 보존하는 기술 또한 놀라웠다. 염도가 높고 냄새가 강렬한 액젓이 장거리 항해 중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암포라 내부는 꼼꼼하게 송진과 밀랍으로 코팅되었고 입구는 천과 점토로 빈틈없이 밀봉되었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도자기 겉면에 잉크로 적힌 글귀들이었다. 폼페이 출신의 생산자 '스카우루스(Scaurus)' 같은 이름표는 물론이고, '최고 등급 고등어 액젓(Liquamen flos scombri excellens)'이라는 원산지와 품질 등급 표시가 명확히 새겨져 있었다. 인류는 무려 2500년 전에 이미 제품 패키징, 원산지 관리, 브랜드 마케팅이라는 현대적 개념을 완벽하게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장독대에서 발효되는 액젓과 그리스·로마 시대의 가룸은 서로 다른 문명에서 탄생했지만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바다와 시간과 태양을 빌려 맛을 만들었고, 그 맛을 더 멀리 전하기 위해 물류와 저장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땅에 묻힌 경이로움 '돌리아(Dolia)': 로마인들의 대형 발효 숙성 시스
▲ 레스칼라 엠푸리에스 유적지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 모자이크 바닥. 정교한 기하학 문양은 2000년 전 이 도시가 누렸던 번영과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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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푸리에스 유적지에서 발견된 로마시대 점토 여과관 시설. 가룸 생산 공장과 함께 남아 있는 이 시설은 로마인들이 식품 생산뿐 아니라 물 관리와 위생, 도시 인프라 구축에도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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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포라가 액젓을 세계로 실어 나르기 위한 항아리였다면, 발효와 숙성의 시간을 머금는 공간이 바로 돌리아(Dolia)였다. 레스칼라의 엠푸리에스 유적지에서 그리스 구역을 지나 언덕 위 로마 시대 구역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땅속에 반쯤 묻혀 있는 거대한 토기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에는 그저 흔한 고대의 물항아리나 곡물 저장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것이 단순한 도자기가 아니라 고대 지중해 식품 산업의 거대한 저장 기술을 상징하는 구조물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한반도의 대형 장독처럼, 로마 시대의 대형 저장 및 숙성 용기인 '돌리아(Dolia)'였다.
돌리아는 운송용 암포라와 목적과 역할이 근본적으로 달랐다. 암포라가 와인이나 올리브유, 액젓을 이동시키기 위한 '모바일 용기'였다면, 돌리아는 한 장소에 고정해 대량의 식재료를 저장하고 장기간 숙성시키기 위한 산업용 고정식 탱크였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크기도 적지 않았으며, 많은 양의 액체와 식재료를 한꺼번에 담을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도자기의 제작 방식과 설치 구조에 있었다. 돌리아는 일반 생활용 도자기보다 훨씬 밀도가 높은 지중해의 석회질·철분 포함 점토를 사용해 두꺼운 점토층을 여러 번 쌓아 올려 제작했다. 액체가 스며들거나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내부는 송진이나 밀랍 성분으로 얇게 코팅되어 완벽한 방수 처리를 거쳤다.
고대인들은 이 거대한 도자기 벽면으로 귀한 진액이 새어 나가거나 산패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부를 송진(brea)과 밀랍(cera)으로 꼼꼼하게 방수 코팅했다. 이 절묘한 요람 안에서 지중해의 천연 천일염과 봄철 코스타 브라바 앞바다에서 건너온 푸른 생선들이 만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녹여내며 제국의 황제와 군단병들의 식탁을 지배할 영롱한 호박색의 가룸과 리쿠아멘을 완성해 나갔던 것이다.
발효 전문가인 우리의 시선을 가장 강렬하게 붙잡은 것은 대부분의 돌리아가 엠푸리에스의 흙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거대한 토기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지중해의 강렬한 햇빛 아래 외부 기온 변화가 클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흙의 단열 성질을 이용해 뜨거운 스페인의 여름에도 내부 온도를 서늘하고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마치 한반도에서 어머니들이 김장 장독을 땅에 묻던 것과 같은 발효 논리였다.
고대인들은 이미 흙과 땅의 온도를 이용해 발효·숙성 환경을 안정화하는 과학적 지혜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햇빛 아래 줄지어 묻힌 돌리아의 풍경은 현대 와이너리의 지하 숙성 방식이나 콘크리트 에그 발효조를 2000년 전에 이미 구현해 낸 경이로운 산업 현장 그 자체였다.
최고급 가룸에서부터 서민의 알렉(Allec)
▲ 엠푸리에스(Empuries) 유적지 방문자센터 입구. 이곳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이 공존했던 지중해 대표 유적지로, 가룸(Garum) 생산과 해상무역으로 번영한 고대 항구도시의 역사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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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건너 로마 제국의 수도로 입성한 액젓은 당시 사회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을까. 박물관의 기록들은 고대의 발효가 단순히 굶주림을 피하기 위한 보존식을 넘어, 철저한 계급적 소비 문화를 형성한 고도의 푸드테크였음을 보여준다. 고대인들은 자연 발효 탱크 안에서 하나의 생선이 빚어내는 결과물을 분리해 제국의 모든 계층을 만족시켰다.
돌 발효 탱크에서 일정 기간의 숙성이 끝나면 맨 위로 투명하고 맑은 호박색 액체가 떠오른다. 이 맑은 액체는 대중적으로 널리 쓰인 일상적 감칠맛 소스, '리쿠아멘(Liquamen)'이 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와 로마 상류층의 식탐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 희귀하고 강렬한 풍미를 원한 귀족들은, 참치·숭어·고등어 같은 특정 대형 어종의 피와 아가미, 내장에 천일염을 더해 특별하게 발효시킨 검고 핏빛이 도는 최고급 액젓 '하이마티온(Haimation)'을 탄생시켰다.
로마의 시인 마르티알리스(Martial)가 "살아 있는 고등어의 피로 만든 가룸"이라며 극찬했던 이 소스는 강렬한 철분 맛과 독보적인 감칠맛으로 귀족들의 미각을 지배했다. 2000년 전 지중해 사람들도 결국 한국의 장독대처럼 생선 속 효소와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감칠맛의 힘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이 검고 비린 사치품에 대한 반감도 존재했다.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이를 가리켜 "비싼 생선의 소금 절인 부패물이 위장을 태워버린다"며 귀족들의 사치스러운 미식 문화를 혐오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세네카의 날선 비판에도 불구하고, 최고급 가룸은 오늘날의 화이트 트러플이나 캐비어처럼 귀족들의 부를 과시하는 미식의 상징으로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었다.
반면, 맑은 가룸을 모두 걷어내고 발효 탱크 바닥에 남은 걸쭉한 생선 찌꺼기조차 버려지지 않았다. 이 부산물은 '알렉(Allec)' 또는 '할렉스(Halex)'라 불리는 짭조름한 페이스트로 만들어져 서민들의 식탁에 올랐다. 평범한 로마의 서민들은 딱딱한 빵에 알렉을 발라 먹으며 고된 노동의 하루를 위로받았다고 한다. 가장 비싼 귀족의 드레싱부터 서민들의 빵 반찬까지, 버려지는 것 하나 없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소비되었던 고대의 발효 과학은 실로 경이로웠다. 액젓을 생산할 때 나오는 대부분의 부산물을 폐기시키는 현대에 비해서 매우 실용적인 생산 방식이었다.
물론 단점도 없지 않았다. 내장과 피를 소금과 함께 발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린내는, 대규모 가룸 생산 시설 주변을 진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이를 지혜롭게 통제했다. 레스칼라 엠푸리에스와 앞으로 향할 스페인 남부 타리파의 바엘로 클라우디아(Baelo Claudia)의 대형 석조 발효 탱크들이 도심을 벗어나 바다와 직면한 해안가에 개방형으로 축조된 데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지중해와 대서양의 강렬한 태양으로 발효를 촉진하는 동시에, 쉴 새 없이 불어오는 거친 바닷바람을 이용해 강한 냄새를 공기 중으로 흩어지게 한 것이다. 낯설고 불쾌할 수 있는 액젓의 향취가, 2500년 전 그리스와 로마 귀족들에게는 맛과 풍요를 상징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식의 향기'였던 셈이다.
발효, 시간을 음식으로 바꾸는 기술
▲ 송연실 진아에프앤씨 대표와 아들 이찬재 실장이 스페인 엠푸리에스 유적지에서 고대 가룸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눈앞에 펼쳐진 석조 발효조와 도시 유적은 2천 년 전 지중해를 연결했던 발효식품 산업과 해상무역의 흔적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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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푸리에스에서 마주한 거대한 석조 발효조와 암포라, 돌리아를 바라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경주의 장독대를 떠올렸다. 언뜻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다. 로마의 발효조는 돌과 모르타르로 만든 거대한 산업 시설이고, 한국의 장독은 흙으로 빚은 개별 용기다. 그러나 그 안에는 놀라울 만큼 공통된 목적이 숨어 있었다.
둘 다 시간을 저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그리스·로마인들은 석조 발효조 안에 생선과 소금을 층층이 쌓아 넣고 태양열을 이용해 가룸을 발효시켰다. 수많은 발효조가 공장처럼 일렬로 배치되었고, 대량 생산된 가룸은 암포라에 담겨 지중해 전역으로 운송되었다. 그곳에서 발효는 하나의 산업이었다.
반면, 한국의 장독은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 미세한 기공으로 숨을 쉬며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호흡하는 장독은 철저히 '머무르며 익어가는 발효'를 위한 천연의 방이다. 대량 생산을 위한 설비가 아니라 자연과 대화하는 발효 공간이었다. 장독은 숨을 쉬고, 바람을 받아들이고, 계절의 변화를 품는다. 발효는 생산 공정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과정이었다.
두 문명의 근본적인 차이는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로마의 석조 발효조는 자연의 힘을 이용하되 그것을 통제하려 했다. 동일한 구조의 발효조를 반복적으로 설치하고 대량의 원료를 넣어 효율적으로 생산했다. 발효는 관리와 생산성의 대상이었다.
반면, 한국의 장독은 자연을 통제하기보다 받아들였다. 햇빛의 강도, 계절의 변화, 바람의 흐름까지 발효의 일부로 인정했다. 장독대는 공장이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였다. 자연을 바라보는 세계관 차이로, 서양은 자연을 통제함으로써 안정성을 확보하려고 하였고, 한반도는 장독을 통하여 자연을 발효 시스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 문명은 결국 같은 진실에 도달했다. 발효는 시간을 음식으로 바꾸는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오래된 발효조의 거친 돌벽에 손을 얹어 보았다. 그 공간은 인간이 자연의 시간을 빌려 음식을 만들었던 위대한 발효의 실험실이었다. 결국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발효를 단순한 음식의 연장이 아니라, '시간을 담고 저장하는 위대한 기술'로 이해해 왔음을 두 문화권의 식문화가 함께 증명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듯, 꼭 닮은 듯한 발효의 철학 앞에서 한반도에서 온 '발효쟁이'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