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서울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영화제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츠바키 산주로', 마스다 토시오의 '위를 보고 걷자', 마스무라 야스조의 '아내는 고백한다', 타사카 토모타카의 '벌거숭이', 이치무라 히로카즈의 '강은 흐른다'까지 일본영화사 중심에 놓인 감독들의 작품이 초청됐지만, 공보부 시사실에서 허가받은 관계자에게만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대중은 볼 수 없었다.
이미 수교 이전부터 반복되어온 금기와 경계의 감정, 식민지 경험이 남긴 역사적 기억, 정치적 부담이 모두 얽히며 일본 영화는 공식적으로는 ‘볼 수 없는 문화’로 규정됐다. 일본 영화 개방이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민감한 금기였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그러나 1990년대로 접어들며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변화의 신호탄은 1996년 첫 회를 연 부산국제영화제였다. 그동안 일본 영화는 외교적·정치적 부담 속에서 제한적으로만 소개됐지만, 한국이 주체적으로 개최하는 국제영화제인 부산에서 일본작들이 정식 섹션에 포함된 것은 개방 논의 이전에 이미 사회적 분위기가 한층 유연해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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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1980~90년대 비디오·PC통신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본 영화는 이미 ‘지하 문화’로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어가 가능한 일부 관객층, 일본 문화원, 해외 체류자, 밀수, 불법 비디오 등 다양한 경로로 작품이 유통됐고, 특히 비디오 플레이어의 대중화 이후에는 암암리에 소비되는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이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