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2일 한국 초연 개막 소설·영화 이어 해외 공연도 '호평' 한국에서 처음으로 '非 영어' 공연 영상·음악·퍼펫 등 종합 무대 예술 예고 "상상력 이용해 파이와 함께 여정 떠나길"
'라이프 오브 파이' 박정민 /사진=에스앤코 제공
'라이프 오브 파이' 한국 공연이 드디어 베일을 벗는다. 원작 소설, 영화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공개된 공연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인생 명작'으로 손꼽히는 만큼 한국 관객들 역시 색다른 전율과 감동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인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난파된 배에서 살아남은 소년 파이가 벵골 호랑이와 함께 구명보트를 타고 태평양을 표류하는 227일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원작은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다. 해당 소설은 발간 약 1년 만에 맨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전 세계 50개 언어로 출판돼 1500만부 이상이 판매됐다. 2012년 제작된 영화 역시 6억900만달러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예술성까지 인정받아 아카데미 감독상·음악상·촬영상·시각효과상 4개 부문을 석권, 그해 최다 수상작이 됐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소설과 영화는 각각 다른 매력으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주인공 파이의 성장 배경과 가치관, 가족 관계와 환경, 종교관 등이 더욱 세밀하게 표현된 쪽은 소설이다. 배 위에서의 여정 역시 눈 앞에 펼쳐지는 듯 생생하게 표현해 놓은 점이 인상적이다. 굉장히 현실적인 묘사로 상상력을 꼼꼼하게 펼쳐내는 게 소설의 특징이다.
반면 영화는 시각적으로 압도감을 주면서 상상의 영역을 더욱 역동적으로 주무른다. 태평양을 표류하는 과정이 CG와 결합해 장엄한 비주얼로 구현됐다. 희망찬 낮과 공포의 밤, 잔잔한 물결과 거친 파도가 쉼 없이 오간다. 책에서 써 내려간 이야기를 이미지로 보여주기 때문에 메시지가 한층 직관적으로 다가올 것 같지만 오히려 반대다. 장대하고 웅장한 영상미는 상상력의 범주를 더 넓히고, 여운을 길고 깊게 가져간다.
'라이프 오브 파이' 케이트 로우셀, 리 토니, 신동원 대표 /사진=에스앤코 제공
그렇다면 무대 위 '라이프 오브 파이'는 어떨까. 원작 소설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에 스크린을 압도했던 영화의 스펙터클을 모두 담아내는 형식으로 제작됐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풍우, 수평선과 맞닿은 광활한 밤하늘 등 자연의 경이로움을 무대 디자인, 조명, 영상, 음악, 음향 디자인을 통해 표현한다.
단연 핵심은 퍼펫 예술을 활용한 동물 표현이다. 사실적이면서도 정교한 퍼펫 예술이 펼쳐진다. 퍼펫은 실제 동물의 골격과 근육, 움직임을 모티브로 디자인 및 설계됐다. 벵골 호랑이인 리처드 파커는 3명의 퍼펫티어가 각각 머리, 심장, 다리를 맡아 연기한다. 이들은 호흡, 시선과 집중, 무게감, 마임 등 기본 원칙을 숙지해 마치 하나의 몸이 된 듯 움직인다.
앞서 한국 초연 제작진 인터뷰에서 퍼펫 무브먼트 시연이 진행됐는데, 김시영, 최은별, 이지용 세 배우가 리얼한 모습으로 리처드 파커를 연기해 감탄을 자아냈다. 전체적인 움직임은 물론이고, 호흡까지도 세 파트가 하나가 되어 숨을 뱉어내는 정교함을 보였다.
공연은 2021년 웨스트 엔드 초연, 2023년 브로드웨이 초연으로 흥행에 성공을 거두는 동시에 영국의 권위 있는 공연계 시상식인 로런스 올리비에상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조명 디자인상, 무대 디자인상까지 5개 부문을 석권했다. 미국 토니상에서도 3관왕을 거머쥐었다.
리 토니(Leigh Toney) 인터내셔널 연출은 "비주얼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시·청각적으로 이머시브한 공연이다. 이런 요소들이 모두 다 합쳐져서 스토리텔링이 극대화됐다고 생각한다"면서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초대해서 파이와 함께 여정을 떠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관객분들이 상상력을 이용해서 각자의 스토리텔링을 통해 이 극을 같이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퍼펫티어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노출한다. 관객들이 공연을 관람하면서 어느 순간 퍼펫들을 믿기 시작하고, 그것들이 실제라고 믿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흘러가면서는 더 이상 퍼펫티어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관객들도 퍼펫들에 숨을 불어넣어 줘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덧붙였다.
'라이프 오브 파이' 퍼펫티어 /사진=에스앤코 제공
'라이프 오브 파이' 리처드 파커 퍼펫티어 김시영, 최은별, 이지용 /사진=에스앤코 제공
실제로 퍼펫은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올리비에상 남우조연상 주인공은 퍼펫티어들이었다.
케이트 로우셀(Kate Rowsell) 협력 무브먼트&퍼펫 디렉터는 "교감이 중요하다. 세 명의 퍼펫티어가 한 퍼펫 안에 들어가서 운영해야 하므로 서로의 리듬, 사인을 읽는 게 중요하다. 단합심을 기를 수 있는 작업을 많이 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도 보행 패턴만 보고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끈끈한 결속력이 필요한 작업"이라고 전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는 극상의 무대 예술과 대사, 음악 등이 포함되지만, 제작진은 뮤지컬 혹은 연극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라이브 온 스테이지'라는 표현을 내세웠다.
한국 공연의 프로듀서인 신동원 에스앤코 대표는 "이 작품을 정형화된 틀에 담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했다. 무대 위에 살아서 움직이는 모든 무대 예술을 종합해서 상상력을 경험하는 포맷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기존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고 설명했다.
'라이프 오브 파이'가 영어가 아닌 언어로 공연하는 건 한국이 처음이다. 신 대표는 "작품을 처음 본 순간 한국어로, 한국 배우로 공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철학적인 메시지가 한국어로, 또 우리 배우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했을 때 훨씬 더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퍼펫티어 역시 "한국 배우가 한 호흡으로 만들어가는 게 훨씬 더 이 작품에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파이 역은 배우 박정민, 박강현이 맡는다. 신 대표는 "박정민은 몰입감 뛰어나고, 박강현 무대 장악력이 훌륭하다. 파이의 여정을 보다 생생하고 뜨겁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히 그는 해외에서 처음 '라이프 오브 파이'를 봤을 때를 떠올렸다.
'라이프 오브 파이' 해외 공연 스틸 /사진=에스앤코 제공
"소설과 영화의 팬이기도 해서 이 작품을 무대화한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공연장을 찾아갔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서 살아 움직이는 리처드 파커와 눈이 마주쳤을 때 결정했어요. 배우의 연기와 퍼펫, 영상, 음향 모든 무대 예술의 요소들이 모여 살아있는 생명체를 목격한 순간의 환희와 충격, 희열을 한국 관객분들과 꼭 좀 나누고 싶다고요. 그냥 보는 공연이 아니라 온몸으로 경험하게 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작품입니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정식 개막해 내년 3월 2일까지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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