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남자의 클래식 - 멘델스존, 현악 8중주 실내악 넘어 교향악적 규모 미학과 철학적 음악관 담겨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장르 천재의 시작을 알린 대표작
19세기의 위대한 작곡가이자 비평가였던 로베르트 슈만(1810~1856)은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을 가리켜 ‘19세기의 모차르트’라고 언급하며 그의 천재성을 극찬한 바 있다. 멘델스존은 비록 38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 또 지휘자로 종횡무진 활약했던 가히 모차르트에 비견할 만한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다. 멘델스존 역시 모차르트처럼 일찍이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이미 십대 시절부터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쏟아냈는데 천재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8중주 작품 20이다.
멘델스존은 일찍이 여러 악기를 다뤘고, 아홉 살의 이른 나이에 피아노 데뷔 연주 무대를 가졌다. 열 살 때부터는 이미 작곡을 시작했으며 15세가 되기 전에 4편의 오페라와 교향곡, 협주곡과 실내악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장르에 걸쳐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완성했던 음악의 신동, 천재 음악가였다. 흔히 음악가들에게 있어 천재의 조건이라 여겨지는 것이 있는데 첫 번째는 타고난 재능, 둘째로는 부모의 물질적·경제적 지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훌륭한 스승을 꼽곤 한다. 위의 조건을 대입한다면 멘델스존은 그에 딱 들어맞는 인물이라 할 만하다.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금융업에 종사했던 부유한 은행장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유복한 환경 속에서 최고 수준의 음악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1825년 멘델스존이 16세가 되던 해 그의 가족들은 ‘레베크 궁전’(Rebeck Palace)이라 불렸던 대저택으로 이사한다. 그곳에서는 어머니의 주도 아래 독서모임과 일요 음악회가 열렸는데 당대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은 모두 참석할 정도였다. 16세의 멘델스존은 이 모임들을 통해 최고 수준의 문화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었으며 유력 인사들을 스승 삼아 다양한 주제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어린 멘델스존의 미학과 철학 음악관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이 시기에 작곡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8중주 작품 20이다.
멘델스존이 기존에 없던 음악 형식인 8중주를 쓰기에 앞서 이미 동시대의 선배 작곡가인 루이스 슈포어(1784~1859)의 현악 8중주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슈포어의 8중주는 기존의 현악 4중주 두 그룹을 동시에 등장시켜 서로 경쟁과 조화를 이루는 형태로 쉽게 말하자면 기존의 현악 4중주를 이중으로 배치한 형태였다. 하지만 16세의 멘델스존은 그와 달리 8대의 악기가 각각 독립성을 가지고 연주되는 온전한 현악 8중주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멘델스존은 이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각각의 악기는 교향곡의 스타일로 연주돼야 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멘델스존은 이 작품을 통해 실내악의 한계를 넘어 교향악적 규모에 도달하고자 의도한 것으로 다른 작곡가들의 8중주 작품을 찾기 어려울 만큼 음악사에 있어 명실공히 최고의 8중주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저자
■ 추천곡 들여다보기
멘델스존, 8중주는 멘델스존이 16세때 작곡된 곡으로 10월 15일에 완성되었다. 네 대의 바이올린과 두 대의 비올라, 두 대의 첼로를 위해 작곡된 작품으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로 그의 천재성을 알리는 대표작인 동시에 오늘날까지 자주 연주되고 있는 대표적인 실내악 작품이다. 작품은 친구이자 바이올린 스승이었던 에두아르트 리츠에게 헌정되었으며 1832년 개정 작업을 거쳐 1836년 독일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작품은 전체 4악장으로 제1악장: 빠르고 활기 찬 악장으로 두 그룹의 현악 4중주는 대비를 이루며 다양한 질감의 악상들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