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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1억원이 몇 주 만에 5억원으로…코인 투자로 마비된 이성, 황홀경 빠진 영혼 [파멸의 기획자들 #12]
등록 : 2025-09-18 10:06
가상화폐 실화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
1부>파멸의 미끼 문 우리 이웃들
12회>60대 은퇴자 박성갑(4)
[서울신문 나우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 및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구글 제미나이 이미지

성갑은 ‘브론즈클럽’과 별도로 50~60대 은퇴자들의 친목방에도 초대됐다. 그가 살던 곳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었다. 증권사와 사모펀드, 벤처캐피탈 등에서 퇴직한 임원 출신이 다수였다. 하나같이 세련된 프로필 사진과 우아한 말투를 자랑했다. 그들의 대화는 격조와 품위가 있었다. 일반적인 주식 이야기나 경제 뉴스 분석을 넘어, 세계 경제의 거시적 흐름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주고 받았다. 블루칼라 출신인 자신과 확연히 다른 이들의 지적 수준에 감탄과 존경을 느낄 정도였다.

신기하게도 이곳의 방장은 그와 이름이 같은 ‘김성갑 대표’라는 자였다.

“저와 이름이 같은 분이 신입 회원으로 들어오셨네요. 정말 반갑습니다.”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김 대표의 메시지가 묘한 친근감을 불러일으켰다. 성갑은 마치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승리자들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교류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그들은 금융권 출신답게 이성조 교수의 리딩 없이도 능숙하게 선물 거래를 진행했다. 그들의 거래는 이 교수보다 훨씬 과감했고, 매매 속도도 더 빨랐다. 성갑은 옆에서 그들의 대화와 거래 내역을 지켜보며 점점 욕심이 생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뤄지는 이들의 적극적인 베팅이 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브론즈클럽 거래와 이 방 거래를 병행하면 가상화폐 수익이 훨씬 커지겠구나!’

며칠을 지켜보며 망설이던 성갑은 마침내 채팅방에 참여 의사를 밝혔다.

“여러분들의 선물 거래에 저도 함께할 수 있을까요?”

방장인 김 대표가 친절하게 답했다.

“물론이죠. 우리 방에 계신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단, 투자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점 명심하시고요.”

성갑은 친목방 회원들을 따라 가상화폐 선물 투자에 뛰어들었다. 이 교수는 판단 착오로 인한 손실 가능성을 열어둔 터라 1회 매매 시 투자 규모를 전체 자산의 최대 20%로 제한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40~50%가 기본이었고, 심지어 투자금 전체를 한 번에 ‘올인’하는 이들도 많았다. 금융 전문가들의 모임답게 리스크를 기꺼이 감수했고 덕분에 성과도 이 교수를 압도했다.

국립대 경영학 교수 출신이라는 회원은 한 번 거래에 2만 달러(약 2800만원)를 태웠는데, 10여분 만에 수익률이 100%를 넘기자 능숙하게 코인을 팔고 빠져 나왔다. 잠깐 사이에 우리 돈 3000만원을 챙기자 회원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성갑 역시 이들을 따라하며 수익을 빠르게 불렸다. 어느새 IEKAF 자산이 40만 달러에 육박했다. 우리 돈 5억원이 넘는 액수가 계좌에 찍히자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1억원 조금 더 넣었는데 불과 몇 주 만에 5억원을 넘기다니… 이 추세면 아무리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올해 안에 10억원은 너끈히 벌겠네. 이게 바로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구나. 앞으로 나와 내 가족은 영원히 노동에서 해방된 경제적 자유인이 될 수 있어.’

이제 그는 하루 종일 가상화폐 앱을 켜고 잔고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가 됐다. 이명으로 잠 못 이루던 예전의 자신은 온데간데없었다. 성갑에게 심야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코인 차트를 지켜보며 부를 일구는 시간으로 변모해 있었다.

그의 머릿속이 코인 투자와 수익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퇴직금을 지키라던 오랜 친구의 조언도, 예금 이자가 아깝지 않냐는 은행 직원의 걱정 어린 질문도 더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신을 푸대접하던 세상에 대한 서운함 또한 눈 녹듯 사라졌다.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진 ‘엘리트’ 동지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돈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대신, 더 큰 수익을 올리지 못할까 봐 초조해하는 도박꾼의 심리가 그의 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성공의 달콤함에 취한 성갑은 자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이 지옥의 문턱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를 둘러싼 ‘승리자들’이 다 사기꾼 패거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파멸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1부 끝·13회로 이어집니다. 사기 피해 예방과 범인 검거를 위해 많은 이들과 기사를 공유해 주세요.)

나한류 작가 wjw.dignity@gmail.com

출처:https://v.daum.net/v/20250918100249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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