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회전초를 소재로 한 최찬숙의 작품 ‘THE TUMBLE’. 사진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은 이 같은 역동적인 움직임을 주목한다.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탐구하고, 움직임의 작동 방식을 연구하며, 이에 따라 급변하는 이 시대 삶의 총체적 모습을 살펴 작품화했다. 동시대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작품으로 그려내는 세계 지도는 이 시대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단초다.
레이크스 감독은 “작품들은 디아스포라와 이주, 지도에 표시된 영토 밖에서 살아 숨쉬는 사회생태계를 기반으로 대안적 개념의 매개와 관계맺기를 살펴본다”며 “전 지구적으로 진행 중인 물리·문화적 변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인프라와 미디어, 공존을 위한 협력을 조망하고, 우리 삶을 규정하는 국경·시스템·정체성 문제에도 다가간다”고 밝혔다.
서소문 본관의 전시 작품들은 비엔날레 주제를 중심으로 다른 전시 공간까지 아우르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앞 마당의 이끼쿠르르의 작품 ‘땅탑’, 로비를 꽉 채운 아프리카계 미국 작가 토크와세 다이슨의 작품을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선다.
메르세데스 아스필리쿠에타의 ‘다섯 번의 주문과 노래 한곡 Ⅰ~Ⅴ’ 전시 전경 일부. 도재기 선임기자
찬나 호르비츠의 ‘오렌지 그리드’. 사진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처음 만나는 작품은 아구스티나 우드게이트의 신작 ‘신세계 지도’(2023)다. 딥 러닝을 비롯한 첨단 기술 등 기존과 다른 제작기술·가치관을 통해 드러나는 새 지도를 보여준다. 지도를 둘러싼 새로운 상상력, 여러 담론들을 일깨우는 비엔날레 주제의 상징적 작품이다.
왕보의 ‘인테리어 분수’는 서울 을지로에서 구한 재료들로 인공적이고 산업화된 풍경과 물리적 공간으로 규정되는 문화 정체성을 살펴본다. 메르세데스 아스필리쿠에타의 ‘다섯 번의 주문과 노래 한 곡 Ⅰ~Ⅴ’는 한국에서 생산된 직물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수출됐다가 다시 암스테르담에서 제작된 설치 작품이다. 이주와 이주민들의 정체성을 사유하게 한다.
최찬숙의 ‘THE TUMBLE’은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회전초를 통해 이동·이주는 물론 땅과 몸의 다층적 관계를 살핀다. 뿌리에서 분리돼 사막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회전초는 악조건에서도 씨앗을 퍼뜨리며 생존을 이어간다. 뿌리 없이 부유하는 현대인의 삶을 은유하는 듯하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한국에서 태어나 홍콩·캐나다·미국 등에서 살아온 제시 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비디오·조각·드로잉 등의 매체를 통해 가족사는 물론 한국의 민속문학 등 다양한 주제·소재가 다뤄진다.
왕보의 ‘인테리어 분수’. 사진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제시 천 작가의 서울역사박물관 전시 전경 일부. 사진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SeMA 벙커에서는 인간과 기술·광물의 이동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들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선보인다. 특히 로테프 필름 팩토리의 ‘지하 흔적 아카이브’는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한 아프리카에서의 우라늄 채취 등 다국적 기업들의 아프리카 자원채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울 지하철 시청역과 을지로역을 연결하는 통로에 있는 미술공간 스페이스mm과 소공스페이스에서는 전현선·왕보 작품이, 서울의 고가 보행로인 서울로7017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스크린 서울로미디어캔버스’에서는 나타샤 톤테이·라야 마틴 등의 작품이 소개된다.
이번 비엔날레는 주요 전시공간과 더불어 서점·카페 등 14개의 협력공간들에서도 관련 출판물·정보 등을 제공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이번 비엔날레는 동시대의 여러 이동과 움직임을 인식·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세계 지도로써 제시된다”며 “서구적 인식론과 세계관을 넘어선 다양한 작품들은 다층적인 이 시대의 네트워크나 움직임, 이야기, 정체성, 언어 등을 파악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11월1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