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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 손재형의 수집 안목이 제대로 조명받길 바라"
등록 : 2022-02-23 12:13
서예 대가였던 소전 손재형의 생전 모습. 소전·월죽문화재단 준비위 제공.
소전 큰 며느리인 월죽 방행자의 생전 모습.
소전 손자인 손원경 씨는 “ 혼란한 시대에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소전의 빼어난 안목과 열정이 오늘날에 바르게 재조명되길 바란다”고 했다.

손자 손원경 씨, 23일 회견서 ‘인왕제색도 매매 경위 문제’ 주장

소전이 대원군 별장 이축하고 병석 누운 후 매매 둘러싼 집안 내홍

“이제라도 당시 진실 알리는 게 소전 명예 되찾는 길이라고 생각”

문화재단 만들어 소전과 집안에 헌신한 방행자 여사 재조명 계획

“조부인 소전 손재형(1902~1981)이 ‘인왕제색도’를 지키지 못하고 그걸 판 사람으로만 기록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걸 바로잡고 소전의 훌륭한 점이 제대로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소전의 손자 손원경(51) 씨는 23일 이런 바람을 전했다. 그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미술품 중 겸재 정선 작품인 ‘인왕제색도’가 소유주였던 손재형의 뜻과 무관하게 이 회장 측에 매매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이날 오후 서울 대학로 토즈 혜화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할 예정이다.

손 씨는 “소전이 1972년 장남 손용에게 ‘인왕제색도’를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게 맡기고 금전을 차용하라는 위임을 했고 손용은 그에 따랐는데, 나중에 소전으로부터 위임을 받지 않은 집안 사람들이 호암미술관 측과 합의하여 소유권을 넘겼다”고 주장했다. 즉, 질권 설정계약의 대리인이 아닌 사람이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과 관련, 손 씨가 지목한 ‘집안 사람’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남겼으나 응답하지 않았다. 호암미술관을 운용하는 삼성문화재단 측은 “국가에 기증된 ‘인왕제색도’는 재단 소유가 아니라 개인(고 이건희 회장) 소장품이었다”며 “(고인이) 미술품을 취득한 경위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소전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는데, 이 사안은 수집가였던 소전의 빼어난 안목을 알려줌과 동시에 집안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알려져 있는 것처럼 소전 손재형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컬렉터였다. 추사 서체를 공부한 후 자신만의 소전체를 만든 서예가이기도 했다. 일본의 ‘서도(書道)’에 맞서 ‘서예(書藝)’라는 우리 이름을 창안한 것이 그였다. 고향인 전남 진도에서 후학들을 양성한 교육자로서도 큰 역할을 했다.

소전이 1943년 경성제대 교수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가 일본으로 갖고 갔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되찾아온 일은 유명하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여서 도쿄는 연합군의 공습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손재형은 병석에 누워 있는 후지쓰카 집을 매일 찾아가 애원한 끝에 세한도를 갖고 귀국할 수 있었다. 그가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세한도는 한 줌의 재로 변했을지 모른다. 석 달 뒤 후지쓰카 집에 포탄이 떨어져 불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 소전이 ‘세한도’를 사채업자에게 넘기는 일이 생겼다. 정치에 투신한 후 선거 자금이 급하게 필요했던 탓이라는 게 미술계 통설이다. 이후 그가 소장하고 있던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등이 호암미술관 측에 넘어갔다.

‘세한도’는 수차례 주인이 바뀐 끝에 개성 출신 사업가 손세기 선생의 소유가 됐는데, 손 선생의 아들(손창근)이 작년 국가에 기증했다. ‘인왕제색도’ 역시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함으로써 국민 품에 안겼다.

손 씨는 “이건희 회장 기증품이 사회적 화제가 되면서 그 대표적 유물인 ‘인왕제색도’가 언급될 때 소전이 귀한 유물을 판 사람으로만 이야기됐다”며 “사실을 바로잡을 의무가 저에게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유홍준 등 미술사학자들이 언급한 것처럼 소전이 정치에 뛰어든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혼란한 시대에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열정과 안목은 오늘날에도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 씨는 “소전은 당신 소유로 거주하고 있던 대원군 별장을 이축하고 별도의 예술관을 짓는 작업을 했다”며 “이후 병으로 쓰러졌는데, 이전 등기 등의 문제로 그 집이 타인에게 넘어가는 일이 생겼다”고 전했다. 그 와중에 ‘인왕제색도’ 역시 법적 권리가 없는 사람들에 의해 부당 매매됐다는 것이 손 씨 주장이다. 그는 “제가 이렇게 나서는 것이 집안 망신이라고 하겠으나, ‘인왕제색도’ 매매의 진실을 전하는 것이 조부인 소전의 명예를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현재 대체불가능토큰(NFT) 사업을 하는 손 씨는 장난감 박물관인 토이키노 뮤지엄을 운영한 바 있다. 또한 영화제작자 겸 감독으로 나서 다큐멘터리 ‘그리고 방행자’를 만든 바 있다. 방행자는 손 씨 어머니 이름이다. 다큐 ‘그리고 방행자’는 일제 강점기인 1942년에 태어난 그의 어머니가 2019년 타계하기까지 집안과 가족을 위해 분투한 여정을 그렸다.

병원을 운영하는 재력가 딸이었던 방행자는 소전 장남과 결혼하고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을 갔다. 귀국한 후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가르쳤다. 미국으로 다시 유학을 떠난 남편 대신에 소전의 병구완을 하고 대원군 별장을 되찾는 소송 등에서도 적극적으로 맏며느리 역할을 했다는 것이 손 씨 전언이다. 그가 소전을 기리는 문화재단을 준비하면서 그의 어머니 방행자 여사의 호인 월죽을 함께 넣은 이유이다.

손 씨는 “제가 제기한 ‘인왕제색도’ 매매 문제에 대한 답변을 관련자들로부터 듣지 못한다고 해도 소전·월죽문화재단 설립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며 “재단을 통해 소전을 재조명하고 어머니가 생전 한 일들도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출처:https://news.v.daum.net/v/2022022311303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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