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재재단은 19일 경남 양산 중부동 268번지 소규모 건축 건립 예정지(면적 184㎡)에서 양산읍성 성벽 몸체 부분 아래 기초시설인 기저부가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양산읍성 축조와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1492년(성종 23년) "이 달에 경상도 양산읍성을 쌓았는데, 높이가 11척, 둘레가 3710척이었다"는 내용이다. 이후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과 양산군읍지(1878년) 기록과 조선후기에 간행된 각종 지도 등을 통해 3대문(동·서·북문)과 성내에 쌍벽류, 객사, 동헌 등 건물이 온전히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접기 지적도(1913년). [사진 제공 = 한국문화재재단]
1913년 일제가 양산 지적도를 작성할 당시만 하더라도 읍성의 전체 둘레가 뚜렷이 그려져 있으며 길이가 약 1500m정도다. 그러나 우리나라 많은 읍성들처럼 일제강점기에 양산읍성도 신작로 개설 및 매립 공사 등으로 광복이 될 때까지 대부분 허물어져 버렸다. 현재는 6~7개소에 부분적인 성터 흔적만 남아있다고 양산 향토사학자들이 전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 결과, 읍성 체성부(성벽의 몸체 부분)의 지대석(성벽의 기단 하부에 평평하게 놓은 돌)과 채움석 등 성벽의 기저부만 확인됐다. 서쪽은 모두 유실되었으며, 내벽석쪽의 가장자리와 상부의 벽체도 모두 유실됐다. 확인된 전체 규모는 길이 1436cm, 너비 235~270cm, 높이 64cm 정도이며, 방향은 북동-남서향이다.
지대석은 부지의 서쪽에서만 일부 확인되는데 방향은 거의 동-서향이며, 남쪽 경계 밖으로 연장된다. 지대석은 아래에 10~30cm 정도의 할석(깬 돌)을 깔아 지반을 견고히 한 후, 그 위에 크기 50~120cm 정도의 대형 석재를 사용해 상면을 평평하고 견고하게 축조했다. 2열로 길이 580cm, 너비 120cm 규모로 확인됐으며 읍성 외벽의 지대석으로 추정된다. 동쪽으로는 성벽 내벽 쪽으로 채웠던 50cm 정도 크기의 할석들이 2~3단 정도 확인됐다. 서쪽 지정석 내부에서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10cm 내외 암키와 편들이 소량 출토됐으며, '田'자명 명문도 있다.
출토유물(`田`자명 암키와). [사진 제공 = 한국문화재재단]
이번에 확인된 읍성 기저부 자리에서 북동쪽으로 약 120m 정도 떨어진 중부동 181번지에는 읍성 내벽 쪽 성벽(길이 15m, 높이 2m)이 잔존하고 있는데, 가장 잘 남아있는 부분이다. 두 성벽 자리는 일제강점기 지적도 상에 표시되어 있는 성(城)의 위치와 모두 일치한다.
한국문화재재단 조사연구3팀 박종섭 팀장은 "현재 양산읍성은 대부분 허물어졌지만, 이번 소규모 발굴조사에서 일제강점기 지적도상에 표시된 성(城)과 일치하는 성벽 기저부가 그대로 잔존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향후 양산읍성의 남아 있는 부분을 포함해 전체 위치와 흔적을 찾고, 역사적 사실을 고증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문화재청 문화재보호기금(복권기금)을 활용해 한국문화재재단에서 진행 중인 '매장문화재 소규모 발굴조사 사업'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