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화신문

목포는 항구다! 그리고 항구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모진 시련과 압제, 수탈의 역사 속에서도 목포는 건재했고 오히려 ‘낭만 예향’으로 거듭났다. 역사의 고비마다 ‘눈물’을 딛고 일어선 민초들의 힘이었다. 지금 목포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눈물’과 ‘항구’로 대변되던 도시의 이미지는 해상케이블카와 ‘뉴트로’로 옮겨져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옛것과 새것이 우아하게 어우러져 또 하나의 목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학의 날개처럼 우아하게 펼쳐진 목포대교를 건넌다. 푸르기도 하고 희기도 한 다리가 고혹적이다. 목포의 시조인 학을 형상화했다는 다리는 ‘대한민국 1번국도’의 시점으로 이 길의 북쪽 끝에는 신의주가 있다. 국토의 남북을 관통하는 길 가장 남쪽에 있다는 기분이 묘한 감동과 설렘으로 다가온다. 다리 오른쪽으로 신안 앞 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고 왼쪽으로는 목포의 영산인 유달산이 위풍당당하다. 그곳에서부터 흘러내려온 두 가닥 케이블에는 흰색과 빨간색의 케이블카가 연이어 바다 위 하늘을 난다. 발을 딛는 곳마다 탄성이 흘러나오는 도시 목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어떨까. 두둥실 하늘에 떠있는 케이블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근두근 가슴이 설렌다. 마음 한 편으론 이 거대한 케이블카가 유달산 정상에서 목포 앞바다의 작은 섬 고하도에 이어지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케이블카가 만들어지는 곳 어디나 마찬가지로 목포 역시 그 설치를 놓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을 법하다. 목포에서 유달산이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해보면 상황은 뻔했을 터다. 환경론자들은 천혜의 자연 환경을 훼손한다고 반대했을 테고, 역사가들은 목포의 영산인 유달산의 정기와 경관을 헤친다고 소리 높여 성토했을 것이다. 또 시민사회 한 편에서는 대대손손 물려줘야 할 시민의 자산을 지자체의 돈벌이로 전락시킨다고 볼멘소리를 하지 않았을까. 그런 우여곡절이야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을까만 지금, 목포해상케이블카는 다행스럽게도 목포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우뚝 서있다. 일각의 우려는 기우로, 더 나아가 일종의 프라이드로 바뀐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잠시나마 목포에서 만난 몇몇 현지인들을 통해 ‘목포의 자존심은 유달산이요 목포의 자랑은 해상케이블카’라는 얘기를 들었을 만큼 목포 현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과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목포해상케이블카가 그들의 자랑이 되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즘 목포를 찾는 여행객들의 대부분은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그곳에 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총 길이 3.23km, 최대 높이 155m. 국내에서 가장 길고 높은 케이블카로 왕복 40분 동안 한 폭의 수채화 같은 낭만 도시 목포와 푸른 다도해의 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다. 이제 목포에 오면 가장 먼저 해상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물론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목포를 좀 더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그게 좋다. 케이블카에 올라 하늘에서 목포 전체를 둘러본 후, 그 다음 시내 구석구석을 탐험하는 여정이 목포를 가장 온전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가슴에 담는 방법이다.

목포해상케이블카를 타는 곳은 북항 스테이션과 고하도 스테이션 두 군데. 그 사이에 있는 유달산 스테이션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내려 유달산을 둘러보거나 전망대에 마련된 감성 충만한 포토 존에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탑승할 수 있다. 국내의 다른 케이블카와 다른 목포해상케이블카만의 장점이자 매력이다. 왕복으로 탑승할 경우, 어느 스테이션에서든 잠시 내려 휴식이든 산책이든 하는 것까지 합한다면 한두 시간은 족히 보낼 수 있는 멋진 일정이 된다. 케이블카의 캐빈은 두 종류다. 흰색은 바닥이 투명으로 되어 있어 발 밑으로 바다와 산이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크리스탈 캐빈이고, 빨간색은 밑이 보이지 않는 일반 캐빈이다. 탑승 요금은 크리스탈 캐빈이 조금 더 비싸지만 짜릿한 긴장과 쾌감은 돈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고소공포증이 없거나 아이들과 함께 타게 된다면 가급적 흰색 캐빈을 타는 것이 좋다. 스릴과 감동이 두 배, 추억도 두 배가 될 테니 말이다. 케이블카를 타는 지점은 북항이나 고하도, 둘 중 하나를 임의대로 선택하면 된다. 편도로 탑승할 경우, 돌아올 교통편을 고려해 선택하면 되고 왕복으로 탑승할 경우엔, 케이블카 이후의 여정을 고려해 결정하면 된다.

목포대교를 건너면 고하도다. 목포 내항에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약 2km 떨어진 곳이다. 해상케이블카의 스테이션이 생기면서 여행자들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곳이지만 케이블카가 아니어도 꼭 한 번 들러 볼 만한 목포의 새로운 명소다. 고하도 스테이션에서 케이블카에 오른다. 케이블카를 타고 난 후 고하도에 좀 더 머물 생각에서다. 세련된 모양의 캐빈은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깔끔하고 쾌적하다. 스테이션을 떠난 케이블카가 하늘로 치솟더니 이내 푸른 바다 위에 떠있다. 바닥이 투명한 크리스탈 캐빈을 탄 까닭에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스친다. 케이블카가 바다 위를 떠가는 구간은 무려 820m. 그야말로 목포와 신안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155m의 주탑을 통과할 때는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스릴이 넘친다. 유달산의 수려한 자태와 목포 원도심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펼쳐지는 육상 구간도 흥미진진하다. 유달산 스테이션에 내리는 건 자유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을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유달산 스테이션에서 내려 산 정상인 일등바위까지 다녀온다면 목포 여행을 제대로 하는 셈이 된다. 유달산 스테이션에서 일등바위까지는 약 500m 거리,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일등바위에 오르면 목포 시가지 전체는 물론 신안과 무안, 심지어 영암과 해남까지 조망할 수 있다. 수많은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있는 다도해의 황홀한 풍광은 물론, 저녁 무렵 이곳에 오른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 해발 228m밖에 되지 않는 산에서 이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유달산이 괜히 유달산이 아니다. 캐빈 유리창에 적힌 ‘목포에 오길 참 잘했다’라는 글귀가 실감나는 시간이다.

고하도 스테이션에서 출발, 북항 스테이션을 거쳐 다시 고하도로 온 건 그곳에 있는 세월호를 보기 위해서다. 염치없게도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세월호가 고하도에 있었다. 지난 2017년 3월22일 진도 앞바다에서 인양 작업을 시작해, 3월 31일 목포 신항으로 옮겨진 세월호는 그로부터 열흘 후, 현재 위치인 신항만 부두 육상에 거치됐다. 향후 고하도 국립호남권생물자원관 인근에 ‘세월호생명기억관’이 건립되면 그와 함께 영구 보존될 예정이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이 계획에 목포 시민의 73% 이상이 찬성했다. 세월호의 영구 보존에 기꺼이 찬성해준 목포 시민들이 고맙다. 처참한 모습의 세월호를 바라보는 건 또 다른 슬픔이다. 그저 아프고 먹먹할 뿐이다. 멀찌감치 둘러쳐져 통행을 막고 있는 철제 펜스에는 더 이상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인 양 빛 바랜 노란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며 아우성치고, 그 안에 갇힌 선체는 사정없이 찢기고 구겨진 채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비극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세월호를 직접 대면하는 것이 힘들고 불편하다면 굳이 찾지 않아도 좋다. 아직 낯선 섬이지만 고하도에는 또 다른 볼거리들과 즐길 만한 것들이 여럿 있다. 고하도 스테이션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이충무공유적지도 그중 하나다. 임진왜란 당시 13척의 배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이 지친 군대를 재정비하고자 머문 곳이 고하도다. 『난중일기』에는 용의 모양처럼 기다란 섬의 지형이 거센 바람을 막아주고 배를 숨기는데 적합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장군은 이곳에서 106일 동안 전투에 나갈 배를 만들고 군사를 훈련시켰다. 이곳에는 고하도를 전략기지로 삼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충무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비가 있다. 1722년에 세워진 비문은 일제 강점기, 야산에 버려져 방치되던 것을 광복 후 모충각을 만들고 그 안에 모셨다. 홍살문과 모충문, 모충각으로 단출하게 꾸며진 유적지지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이 꼿꼿했던 장군의 기개와 충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고하도에는 6km 정도 되는 둘레길도 있다. 길은 능선을 따라 걷는 2.9km의 용오름길과 3.1km의 둘레숲길이 있는데 고하도전망대를 거쳐 용머리까지 이어진 1km의 해안 데크만 걸어도 고하도 트레킹의 백미를 맛볼 수 있다. 어느 길을 걷든 만나게 되는 고하도전망대는 꼭 가보는 게 좋다. 고하도의 명물이 된 전망대는 임진왜란 당시 전쟁을 승리로 이끈 판옥선 13척을 격자형으로 쌓아놓은 독특한 모양으로 1층부터 5층까지 카페, 전시관 등 특색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5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야 하지만 중간 중간 적혀있는 ‘끝까지 올라간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는 글귀처럼 전망대에 오르면 상상 그 이상의 환상적인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전망대 아래쪽에는 해안 절벽과 나란히 걷는 해상 산책로가 있다. 앞으로 보이는 웅장한 목포대교와 바다 건너 유달산, 그리고 하늘에 떠 있는 케이블카와 정겨운 항구의 풍경이 마치 꿈길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준다. 고하도에 간다면 케이블카와 상관없이라도 반드시 보고 걸어야 할 최고의 장소다.

해상케이블카와 함께 새롭게 떠오른 목포의 명소는 서산동 시화골목이다. 서산동은 유달산 자락에 자리한 어촌마을이다. 1897년에 개항한 목포에는 그 이듬해부터 일본인들의 이주가 빈번했고 그들이 하나둘씩 도심을 장악하면서 원주민들은 유달산 자락으로 밀려났다. 서산동과 인근 온금동에는 가난한 뱃사람들이 모여들어 삶의 터전을 이뤘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 신산하고도 절절한 삶의 애환과 이야기들이 그곳에 켜켜이 쌓이게 된다. 그렇게 사연 많은 동네가 지금은 정겹고 예쁜 벽화마을로 옷을 갈아입었다. 타지에서 온 젊은이들과 지역의 문화예술인 그리고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동네의 오랜 역사와 삶의 이야기들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골목 담벼락에 옮겼다. 미로처럼 얽힌 좁다란 골목길은 알록달록 색깔을 입어 생기를 더했고 주민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골목을 찾는 여행자들은 작고 소박하면서도 생기발랄한 골목 예술에 탄성을 자아낸다. 눈앞에 펼쳐지는 목포 앞바다의 멋진 풍광과 어우러진 유달산 산동네의 유쾌한 변신에 그저 흐뭇해 할 뿐이다.

동네 가장 높은 곳에 ‘보리마당’이 있고 그 아래로 세 갈래의 좁다란 골목이 바다를 향해 흐른다. 보리마당은 과거 보리를 수확해 타작하던 곳이다. 언덕배기 좁은 땅에 조금씩 심은 보리를 타작할 마당이 없어서 동네에서 가장 너른 공터에 모여 함께 타작을 했는데 그곳이 바로 보리마당이다. 시화골목은 그 아래에 있다. 세 개의 골목 어디를 걸어도 보리마당과 이어지고, 전부 둘러봐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골목 작품들을 하나하나 둘러봐도 좋다. 멋을 부리지 않은 소박한 글과 그림들이 소소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시화골목 안에는 아기자기 앙증맞은 카페와 갤러리들도 여럿 있고 사진관과 공방 등 다양한 공간들이 자리 잡고 있어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것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흥미롭다. 시화골목이 있는 서산동은 ‘가장 목포스러운 동네’로도 소개된다. 과거 조그마한 항구였던 목포의 원형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종종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하곤 한다. 1987년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과 목포 건달이 국회의원이 되는 영화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의 촬영지도 바로 이곳이다. 특히 영화 ‘1987’에서 배우 김태리의 집으로 나왔던 ‘연희네 슈퍼’는 그 모습 그대로, 시화골목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여행자들의 필수 인증샷 명소로 꼽힌다. 시화골목 계단을 올라 보리마당에 서면 다닥다닥 붙어있는 서산동 마을의 알록달록한 지붕들이 보이고 그 위로 시원스런 목포 앞바다가 펼쳐진다. 시화골목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보리마당은 요즘 ‘바다가 보이는 마당’이란 의미로 ‘바보마당’이라고 불린다. 그곳에서는 한참을 머물러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낮은 지붕 너머로 아스라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와 작은 섬들을 바라보며 잠시 멍을 때려도 좋다. 골목 구석구석에서 만난 수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려본다면 저절로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이토록 행복한 여행이 있을 수 있을까. 지나간 시간이 지금의 삶을 밝혀주는 곳, 시화골목은 목포의 보석이다.

유달산에 오르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해상케이블카 유달산 스테이션에서 내려 올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노적봉관광안내소 쪽에서 올라도 좋다. 유달산 중턱을 한 바퀴 빙 도는 6.3km의 둘레길도 있다. 길이 비교적 잘 정리돼 있어 누구나 편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유달산은 그리 크지 않은 산이지만 노적봉과 마애불, 오포대 등 유적들이 많고 자생식물원과 조각공원, 미술관 등 둘러볼 곳도 많다. 산 정상인 일등바위와 그 아래 이등바위 그리고 대학루, 달선각, 유선각, 관운각, 소요정 등 전설이 깃든 정자에 오르면 목포시와 다도해의 정경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노적봉 맞은편 산 중턱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과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노래비도 있다. 유달산은 저녁 무렵 올라도 좋다. 그곳에 올라 바라보게 되는 다도해의 노을 풍경과 야경은 목포 여행의 백미 가운데 하나. 목포 여행에서 반드시 경험해야 ‘필수템’이다.

유달산 아래 원도심은 자박자박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따지고 보면, 가슴 아픈 망국의 역사가 뚜렷하게 남아있는 곳이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고 정이 가는 곳이기도 하다. 때론 역사가 그냥 역사로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목포의 원도심이라 불리는 이곳은 후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더해져 소중한 민족의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근래 들어 적잖은 변화가 휘몰아치고 있는 원도심이지만 목포근대역사관 1, 2관을 비롯한 역사문화공간들은 살아있는 박물관이자 교육장으로의 기능을 충실히 해내고 있고, 100년이 훌쩍 넘은 적산가옥들은 문화와 예술을 만나 근현대의 역사와 미래의 비전을 도모하고 있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해 목포를 찾는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된 목포근대역사관 1관은 언제 봐도 인상적이다. 목포 개항 이후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진 건물로 이후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활용되다가 해방 후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을 거쳐 현재는 그간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으로 쓰이고 있다. 목포의 근대 건축물 중 가장 오래 됐고 규모가 크며,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건물이다. 요즘 이 건물은 목포 여행의 핫 플레이스로 꼽힌다. 개화기 의상을 입은 젊은 여행자들이 이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2층으로 꾸며진 전시관에는 목포진에서 개항장으로,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의 목포의 시대상을 다양한 자료로 소개하고 있고 라틴어 미사경본과 조면기 같은 유물도 전시해놓고 있다. 건물 창문 위에 전범기를 형상화한 하얗고 동그란 문양이 그대로 남아있어 묘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현재 외벽 보수공사가 한창인 목포근대역사관 2관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조선 농민 수탈 기관이었던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으로 전라남도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된 건물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의 상징적인 장소였던 이곳은 현재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와 잊혀져 가는 목포의 옛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역사 인식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1층 전시실에서는 1920년대 말 목포의 거리와 건축물 등 약 80여 점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고, 2층 전시실에서는 동학농민혁명에서부터 1920년대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목포 사람들의 독립 운동사를 소개하는 ‘목포 독립운동 특별전-영웅, 그 날의 기억을 걷다’가 전시되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의 보고인 목포 원도심은 지금 정중동의 모습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한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곳에는 사진 찍기 좋은 ‘핫플’을 찾아오는 젊은 여행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세월을 비켜간 듯 이색적이면서도 신선한 목포 원도심의 풍경이 과도한 문명에 지친 도시 여행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전라도 방언에 ‘개미진’ 혹은 ‘게미진’이란 게 있다. 주로 맛을 표현할 때 쓰는 말로, 겉 맛이 아니라 속 맛, 좋았다가 마는 게 아니라 먹을수록 자꾸 당기고 그리워지는 맛을 ‘게미진 맛’이라고 한다. 남도 식도락 여행의 중심인 목포가 자랑하는 아홉 가지 별미가 바로 그런 맛이다. 목포는 1897년 개항 이후 120여 년 동안 섬과 육지를 잇는 관문으로 온갖 먹거리들이 몰려든 곳이다. 무안의 낙지, 신안의 홍어와 민어, 그리고 갈치와 우럭, 병어, 준치, 꽃게, 아구 등 최고의 식재료에 토속적인 손맛이 어우러져 목포 9미를 만들어 냈다. 어디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목포의 맛이다. 목포 9미는 홍어삼합, 세발낙지, 민어회, 갈치조림, 꽃게무침, 병어회, 준치무침, 아구탕, 우럭간국을 말한다. 모두 제철이 있는 음식이지만 요즘은 사시사철 싱싱한 재료로 최고의 맛을 제공한다.

목포 수산시장에 가면 거의 모든 가게에서 홍어 손질이 한창이다. 가장 비싸고 귀한 흑산도 홍어부터 대청도 홍어와 수입산까지, 삭힘의 정도와 부위를 구분해 포장한다. 홍어삼합은 홍어와 삶은 돼지고기를 신 김치에 싼 다음 새콤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삭힌 홍어 특유의 맛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다. 갯벌 속 인삼이라 불리는 낙지, 그것도 가느다란 발을 가진 세발낙지는 보통 8~9월이 제철이지만 목포에서는 언제나 맛볼 수 있다. 특히 가느다란 발을 막대에 감아 구운 호롱낙지는 별미 중에 별미. 그 밖에도 낙지탕탕이와 연포탕, 낙지회무침 등 10여 가지의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낸다. 버릴 게 하나 없어 백성의 고기라 불리는 민어는 산란을 앞둔 여름이 제철. 최고의 복날 보양식으로 꼽힌다. 초장이나 된장보다 기름장에 찍어 먹어야 민어 고유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민어의 부레는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다. 갈치가 가장 맛있을 때는 살이 차고 기름이 오르는 가을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갈치에 온갖 양념을 더해 자작하게 끓여내면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목포먹갈치는 금어기인 7월을 전후해 가격이 폭등하니 참고할 것. 꽃게를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지만 목포의 시그니처 요리는 꽃게무침이다. 꽃게살을 정성스럽게 발라내 갖은 양념에 버무린 후 따뜻한 밥에 비벼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음식점마다 꽃게무침을 내어주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흰살 생선인 병어는 살이 연하고 지방이 적어 맛이 담백하다. 특히 사시사철 언제나 잡혀 늘 싱싱한 상태로 맛볼 수 있다. 회와 찜, 무침 등 어떻게 먹어도 맛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고 기본은 한다는 뜻이다. 4월에서 7월 사이 서남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준치는 생선 중 맛이 으뜸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먹었지만 요즘은 무침으로 먹는 게 일반적이다. 마산의 음식으로 유명한 게 아구지만 목포의 아구 요리도 미식가들 사이에 손꼽히는 별미다. 겨울에 잡은 아구를 급냉해서 사용해 언제나 살이 탱탱하고 맛이 좋다. 우럭은 영양가가 높은 생선으로 알려져 있다. 피로 회복과 간에 좋고, 노화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 반건조시킨 우럭을 대가리째 넣고 푹 끓이면 시원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우럭간국에 반주 한잔 곁들이면 더욱 맛있다.

목포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옛날 간식도 있다. 목포에 오면 누구나 한번씩 찾아가 맛보는 쑥굴레다. 쑥굴레는 쑥떡에 팥고물을 입히고 조청에 담가 내놓는 목포의 대표적인 간식. 1956년부터 만들어온 목포의 향토음식으로 맛도 좋고 의미도 남다르다. 블루리본 서베이 맛집으로 선정될 만큼 특별하다.

군산에 이성당이 있고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목포에는 코롬방제과가 있다. 전국의 유명 빵집을 순례하는 ‘빵덕후’들에겐 성지 같은 곳이다. 1949년에 개업해 72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코롬방제과는 전국 5대 빵집으로 유명하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는 크림치즈바게트와 리얼새우바게트. 목포를 찾는 여행자들이 기꺼이 줄을 서서 사고야 마는 메뉴다.

미락식당 목포시 백년대로 231번길 12 쑥굴레 목포시 영산로 59번길 43-1 코롬방제과 목포시 영산로75번길 7

유 달산 아래 원도심 속 작은 한옥집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좁다란 골목이 길게 이어지고 온갖 종류의 꽃들이 터널을 이룬다. 그 뒤로 고풍스런 모양의 한옥 한 채가 터를 잡고 있다. 학은재(鶴隱齋). 아담하지만 정갈한 집이다. 작은 마당과 툇마루가 정겹다. 미닫이문을 열면 커다란 원목 탁자가 놓인 마루가 있고 그 양 옆으로 두 개의 방이 있다. 조용히 휴식을 취하거나 책을 읽기에 더 없는 공간이다. 무엇보다 신경 쓸 주변이 없어 그야말로 나 혼자만의 세상처럼 ‘은거’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오랜 세월 공직에 몸담았던 주인 노대현 씨는 은퇴 후 목포가 좋아 그곳에 터를 잡고 산다. 목포가 너무 좋아 『목포산책』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사람과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손님의 세밀한 감정까지 헤아려가며 이 집을 운영한다. 조용히 머물다 가라고 오로지 한 팀에게만 집을 빌려주고, 이용 요금도 저렴하게 받는다. 집과 사람 모두에게 은은한 인문학적 향기가 흐른다. 툇마루에 앉아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며 책을 봐도 좋고 낮잠을 즐겨도 좋은 곳. 학은재는 보태고 덜고 할 것도 없는 완벽한 힐링 공간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2호 (2021.03.31~2021.04.06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