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사람들 이야기. 모두가 풍파에 휩쓸리는 고달픈 삶이겠거니 하지만 그 와중에 타인을 살리는 삶을 사는 이들, 인생의 고통 쯤이야 예술로 승화해버린 사람들도 있다. 김탁환 작가(50)의 신작 장편소설 <이토록 고고한 연예>(북스피어) 주인공 ‘달문’ 얘기다. 최근 만난 김 작가는 수수께끼 같은 역사 속 인물 달문을 만나 작가로서, 인간으로서 오랜 고민의 답을 찾았다고 했다.

18세기 조선, 도성 청계천 수표교 밑 거지 무리의 왕초였던 달문은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고 콧구멍이 하늘로 향한데다 귓불이 어깨 닿을 만큼 늘어져 ‘가장 못생긴 거지’로 통했다. 글자도 모르고 셈도 약해 멍청하기로도 유명했다. 반면에 달문은 재담과 철괴무(탈춤의 하나)가 출중해 조선 최고의 광대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무대를 보려면 고관대작들도 매달려야 했다. 거지의 남루함과 광대의 화려함을 동시에 발현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매력적이지만, 김 작가가 달문에게 관심을 가진 건 그의 ‘선함’ 때문이었다.

김 작가는 대학 다닐 때 연암 박지원, 문무자 이옥 등 조선후기 문인들의 글에서 달문을 처음 접했다. 기록들에 따르면 달문은 ‘조선에서 가장 착한 사람’으로 회자됐다. 10여년 전부터 달문을 소설로 써보라는 제안을 여러 번 받았던 김 작가는 “달문이 착한 건 알겠는데, 그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고 했다. 작가가 이번 소설을 쓰게 된 건 세 가지 꼭지점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달문에 관한 기록들, 그리고 사진실 전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교수가 남긴 산대놀이 등에 관한 연구물, 마지막으로 작가 자신이 거리에 나가 있던 시간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실제 거리에서 달문과 같이 착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촛불정국 때 그런 사람들이 다수인 것을 봤고요.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면서 피해자 옆에 있던 사람들을 보면서 ‘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편안한데, 왜 거리에 있을까’…. 그런 질문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달문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소설은 극중 화자인 매설가(소설가) ‘모독’을 통해 달문의 일생을 따라간다. 달문은 거지 무리에서 굶주린 이가 없도록 제 몸을 상해가며 왕초 역할을 했다. 모독이 운영하는 인삼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자리를 잡는 듯했으나, 이내 산대놀이 으뜸 광대로 돌아간다. 다시 떠돌이가 된 달문은 기생들을 관리하는 조방꾸니를 맡는데, 요즘으로 따지면 대형 연예기획사를 운영한 것이다. 조방꾸니들이 기생들을 착취했던 관행과 달리 달문은 기생들의 몫을 탐내지 않고, 그들의 재능이 돋보일 자리만 마련했다.

달문은 조방꾸니로 큰돈을 벌게 됐으나 역시 제 몫은 챙기지 않고 돌연 도성을 떠난다. 이후로는 유랑단을 꾸려 전국을 순회한다. 부자들 앞에서 판을 벌여 번 돈으로 흉년에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베풀었다. 달문을 따르는 이들이 많아, 활빈국을 꿈꾸던 이들이 달문의 이름을 팔기도 한다. 이 때문에 왕(영조)이 역모죄 혐의로 직접 달문을 문초하기에 이른다.

김 작가는 “달문은 추함과 아름다움, 게으름과 성실함, 비극과 희극을 아우른다. 그 모든 것을 자기 안에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고 했다. 특히 “소설사에서 착한 캐릭터가 등장해 재밌는 이야기는 거의 없는데 달문은 사람의 착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독자들을 끝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캐릭터”라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그는 “달문이 한국인을 대변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정이 많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도와주고, 그러면서도 흥이 많아서 놀줄 알죠. 촛불집회에서도 막 놀고 그랬잖아요.”

달문의 삶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큰 물음을 던진다. 1996년 데뷔해 역사소설가로 이름을 알린 김 작가는 이번 작품에선 기존 역사소설의 문법을 고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증 밖에서 작가적 상상에 기댄 부분도 적지 않다. 작가는 달문의 행적에서 추론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더 부각시키고 싶었다. 조선후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선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라면서도 너무 착하면 손해를 보게 된다고 가르치잖아요. 달문의 삶은 다른 걸 얘기하죠. 달문은 평생 손해만 보고 살았는데 오히려 그게 명성을 높이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지키더라고요.”

김 작가는 달문이 계속 선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자기 것이 생기면 끊임없이 버렸기 때문”이라고 봤다. 글을 쓴 지 20여년이 흘렀고, 나이도 50대에 접어들어 어떻게 살 것인가가 고민이 됐다는 그는 이번 소설 집필 이후 “쓰고 싶은 사회파 소설을 계속 쓰고 (명예나 권력 등에) 매달리지 않고 버리면서 살아야겠다고 정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거짓말이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등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한 김 작가는 ‘세월호 작가’라 불린다. “촛불이 지나간 이후에도 굴뚝 위를 비롯해 여전히 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작가의 얼굴에 ‘선한 미소’가 번진다. 김 작가는 2016년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해 ‘김탁환의 전국 제패’란 이름의 전국 순회 강연을 열었는데, 지난달 26일부터 2일까지 두 번째 ‘전국 제패’를 진행했다. 그는 지금 거리에 있다. 현재 집필 중인 그의 다음 작품도 거리의 사람들 이야기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출처:http://v.media.daum.net/v/2018070211434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