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년간 이 음악제가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정통 실내악을 추구하다 보니 2030 젊은 친구들이 듣기엔 어려운 곡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한 번도 연주되지 않았으면서, 누구든 들으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곡들을 전진 배치했지요. 개막 공연 때 김선욱(피아노),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 김두민(첼로)이 연주한 슈베르트 삼중주는 전도연 영화 '해피엔드'에도 삽입된 인기곡. 알고 보면 클래식이 우리 삶에 찰싹 달라붙어 있으면서, 잠시 멈춰 서서 생각에도 잠기게 하는 음악이란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제도 '멈추어, 묻다'입니다."

또랑또랑한 말투가 시원하면서도 대찬 자신의 연주를 닮았다. 해마다 여름이면 강원도 평창에서 2주간 펼쳐지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새 예술감독이 된 손열음(32). 그는 "연주자가 펑크 내는 악몽을 꾸고, 표가 안 팔릴까 봐 덜덜 떨었다"면서도 "연주만큼은 무조건 좋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 도망치지 않았다"고 했다.

강원도 원주에서 나고 자란 손열음은 200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를 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노 스타로 거듭났다. 글 잘 쓰는 연주자로, 음악 프로 MC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그가 이번에 제대로 판을 바꿨다. 2004년부터 강효(73) 줄리아드음악원 교수, 2011년부터 첼리스트 정명화(74)·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0) 자매가 살찌운 이 실내악 축제를 책임진 것. 전임 감독들 나이를 반으로 뚝 잘라도 못 미치는 '어린' 감독이라 음악계는 기대 반, 우려 반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지난 25일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세 시간 동안 펼쳐진 개막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닝 펑이 밀스타인의 8분짜리 독주곡 '파가니니아나'를 날카롭게 직조할 때부터 청중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이어 두 명의 연주자가 들려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세 명의 연주자가 선보인 브람스 피아노삼중주 등 점차 규모를 키워 '다음엔 몇 명이 나올까' 호기심을 일으켰다. 압권은 드보르작 현악사중주. 프레디 켐프(피아노)와 보리스 브로프친(바이올린), 막심 리자노프(비올라), 알렉산더 차우시안(첼로) 등 이 시대 가장 핫한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한 무대는 연주자들과 작품의 특장이 찰떡같이 맞물리며 환호를 끌어냈다. 20세기 작곡가 밀스타인에서 19세기 슈베르트로 시간을 거스른 프로그램도 인상적이었다. 윤호근 국립오페라단장은 "생각 많고 욕심 많은 젊은 감독의 예술성이 짙게 묻어난 프로그램이었다"며 "세계 무대에 내놔도 손색없는 겁 없는 시도에 깜짝 놀랐다"고 평했다.

이전에 없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과감히 신설하고, 프로그램 책에 들어가는 곡 해설도 직접 썼다. 월정사 성보박물관과 원주 뮤지엄 산 등지에서 여는 '찾아가는 음악회'도 늘렸다. 그의 목표는 해발 2000m 로키산맥에 자리한 폐광촌 아스펜에서 외지인 10만명이 클래식을 즐기는 미국의 아스펜 음악제처럼 평창대관령음악제를 "강원도 명물(名物)로, 나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너무 일찍 예술감독을 맡는 데 대해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프란체스코 피에몬테스, 베아트리체 라나 등 유럽 친구들도 고국에서 음악축제를 이끌어요. 연주도 거뜬히 해내면서!" 손열음은 "가만히 앉아서 피아노만 치고, 불러주는 무대에만 서는 삶은 한계가 있다"고 했다. "삼십 대가 됐으니 틀을 깨는 동력은 스스로 갖춰야죠. 일단 뛰어들었으니 끝까지 해볼래요. 꿈은 얼마든지 크게 가져도 되잖아요? 하하!" 음악제는 다음 달 5일까지. (033)240-1360

출처:https://news.v.daum.net/v/20180730030238023